파치들의 해방일지

"언니, 노동해방이 뭐예요?" 막 집회에 다니던 새내기 시절, 동지니 투쟁이니 하는 말들도 낯설었지만, 가장 궁금한 단어는 '해방'이었다. '가자, 노동해방', '해방의 길목', '해방을 향한 진군' 등 함께 부르는 노래에서 반복되는 그 단어는 오래된 주문 같기도, 오지 않은 미래 같기도 했다. "글쎄, 나위는 해방이 뭐라고 생각해?" 질문을 했더니 나에게 되묻던 선배 언니.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거요? 일 안 하는 거요? 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는 거요?" 답은 들을 수 없었고, 해방은 안개 속 반딧불 같은 이미지로 남았다. 나는 해방을 목표나 미래라 여겼고, 지금 이곳에서 가능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해방이 미래형으로 자주 쓰인다는 점을 미루어보건대, 다수가 그렇게 여기나 보다. 그런데 여기, 지금 이곳의 해방을 담은 책이 있다.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 투쟁을 담은 책, 소희 작가의 <파치>(2025년 10월 출간)다. 해방을 맛볼 일생일대의 기회 이전 직장에서 노조를 경험하고 "노동조합이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놓을 수 없던 차헌호는 비정규직 운동을 조직하러 구미에 있는 아시히글라스 공장에 취직했다. 노조를 만들려고 6년간 궁리했지만 쉽지 않았다. 족구모임도 꾸리고, 동료들에게 신뢰받고 싶어 관리자도 맡고, 수시로 밥 먹으며 마음을 나누었지만,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다들 공장을 떠났다. "이직률이 굉장히 높은 게 어려운 점"이었고, "누군가 해주기를 바랄 뿐인 현장"이었다. 차헌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사람들 이야기 속에 현장을 바꿀 답"이 있다는 믿음으로 동료들이 공장에서 느끼는 불만을 차곡차곡 기록했다. 그러다 기회가 왔고, 영화 <파업전야>를 찍는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차헌호는 해고자 신분으로 공장 밖에서 노조 가입서를 돌리고,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현장에 들어와 연설했다. "여러분 앞에는 지금 일생일대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를 잡으면 신세계가 보일 겁니다." 하청 노동자라는 이유로 구내식당에서 밥도 못 먹고, 회사가 줘야 할 경조사비도 급여에서 떼이고, 작은 실수로도 일주일간 빨간 징벌 조끼 입고 일해야 했던 공장. 그곳에서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말을 들은 노동자들은 귀가 쫑긋했다. 비정규직은 노조도 못하는 줄 알았으니까. 한 명이 두 명을 조직하고 두 명이 네 명을 조직해 파견 노동자 178명 중 138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2015년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