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영어 발음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죽음 앞에서도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의연히 던지는 이 문장에서 우리는 이미 쇼의 태도를 읽게 된다. 그는 진지함을 회피하지 않지만, 결코 엄숙주의에 머무르지 않았다.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끝까지 유머를 놓지 않았던 사람이다. 수업 시간에 이 문장을 소개하면 학생들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선생님, 이거 완전 '현생 포기 선언' 같아요." "모의고사 끝나고 드는 생각이랑 똑같은데요?" "초월 번역 아닌가요?" 교실에 웃음이 번지는 그 짧은 순간, 쇼는 한 세기를 건너뛰어 교실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농담으로 시작해 진실을 말하는 작가, 조지 버나드 쇼 쇼는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이자 사회비평가로, 페이비언 사회주의 운동과 런던정경대(LSE) 설립에도 관여했던 진지한 지식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세상을 한 발 비껴서 바라보았다.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이 "당신의 머리와 제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훌륭할까요?"라고 말했을 때 "그 아이가 제 얼굴과 당신 머리를 닮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받아쳤다. 이 짧은 농담에 담긴 재치와 냉소, 현실 감각이 쇼의 어조를 잘 보여 준다. 웃음 뒤에 숨은 씁쓸함, 농담 뒤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질문. 그가 쓴 희곡 <피그말리온>(Pygmalion) 역시 그런 작품이다. 낭만적인 신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언어와 계급, 여성의 주체성, 교육과 언어 권력에 대한 진지한 실험이자 비판이 들어 있다. 피그말리온 신화를 비튼, 언어 실험극 '피그말리온'은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온 조각가 이름이다. 키프로스 섬의 여성들에게 환멸을 느낀 조각가가 자신이 빚은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고, 아프로디테가 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갈라테이아'라는 여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파생된 개념이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다. 즉 타인의 기대가 실제 성과를 끌어올리는 현상으로, 교육학에서는 '로젠탈 효과'라고 한다. 작품의 무대는 빅토리아 말기의 런던이다. 산업혁명으로 물질적 풍요는 늘어났지만 언어 하나로 계급이 재단되던 시기로, 말투는 곧 신분증이었고 억양은 출신 계층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 시대에 거리에서 꽃을 파는 소녀 리자는 허름한 옷보다도 먼저 '코크니(Cockney)' 억양 (런던 동부의 노동자 계층에서 쓰이던 방언과 그 억양) 때문에 차별을 당한다. 반면 음성학자인 히긴스 교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그들의 신분과 사는 지역, 교육 정도, 가능성을 단번에 분류해 버린다. 이 작품에서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