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벽에서 줄타기로... 그래도 이진우는 부하는 못 밟았다

나는 '내란중요임무종사자'가 아니다. 15일 '내란우두머리' 재판(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에 나온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기조였다. 그는 12.3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탓에 당일 몹시 혼란스러웠지만, 군인으로서 군통수권자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네 명이 한명씩 끌어내라', '문을 부숴서라도 들어가라', '총'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들었다고 인정하되 '국회를 방호하러 갔다'는 등 책임과 모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했다. 이날 증인신문 핵심 쟁점은 이 전 사령관과 윤석열씨의 계엄 당시 통화다. 두 사람은 지금껏 3~4차례 통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부관 오상배 대위 는 5월 12일 윤씨 재판에서 네 번의 통화 가 있었다며 첫 통화에선 대통령이 '상황이 어떠냐' 고 물었고, 두번째 통화에선 '네 명이서 한 명씩 들쳐 업고 나와라' 는 지시를 내렸으며 세번째 통화에선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 고, 네번째 통화에선 '결의안이 통과됐어도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된다' 고 했다고 증언했다. 올 2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입을 꾹 닫았던 이 전 사령관은 군사법원에서야 조금씩 입을 열었다. 다만 본인이 생각나는 통화는 세 번 정도 이고, 첫번째 통화와 두번째 통화 내용은 오 대위와 비슷하게 기억하지만, '들쳐 업고 나와라'의 대상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를 위협하는 세력 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했다. 또 세번째 통화의 시점은 오 대위처럼 국회 계엄 해제요구안 가결 직후로 기억하고 '발로 차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는 말과 '총'이란 단어 를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내란특검이 뒤늦게 확보한 경호처 비화폰 기록에 따르면, 윤씨는 경호처 비화폰으로 이 전 사령관의 군 비화폰과 ① 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 33분 33초 : 41초 동안 ② 4일 오전 0시 32분 18초 : 29초 동안 ③ 0시 34분 13초 : 17초 동안 ④ 0시 36분 10초 : 25초 동안 ⑤ 1시 6분 56초 : 1분 12초 동안 ⑥ 1시 13분 32초 : 34초 동안 ⑦ 3시 47분 26초 : 3분 39초 동안 등 7차례 통화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가운데 ①번을 첫 통화, ②~④번을 두 번째 통화, ⑤번을 세 번째 통화로 기억해온 듯하다는 입장이다. 이 전 사령관은 또 '네 명이서 한 명을 끌어내라',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 '총' 같은 대통령의 발언을 " 명령이라 생각 못했고, 질책이라 생각했다 "고 말했다. 그는 "무거운 질책으로 느꼈다"며 "'너희들이 국회까지 가서 국회 기능이 문제되게끔 만들어놓고 뭐하냐'는 취지로 들었다"고 했다. 계엄 당시 수방사는 국가중요시설 방호라는 본연의 임무에 맞게 국회를 지키고자 했을 뿐이라며 자신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할 리 없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이진우의 미묘한 줄타기... '갈라치기' 나선 변호인단 윤씨 변호인단은 이 전 사령관의 증언으로 오 대위 증언을 흔들려고 했다. 오 대위는 윤씨의 국회 계엄해제 방해 지시뿐 아니라 추가 계엄 시도 정황까지 진술한 만큼 피고인에게 몹시 불리한 증인이다. 그는 당시 정확한 시각은 기억 안 나지만 첫 통화는 수방사 병력이 막 국회로 도착했을 때, 두번째와 세번째 통화는 휴대폰으로 보던 YTN뉴스에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모이고 있다'고 나올 때, 마지막 통화는 12월 4일 1시 3분 국회 가결 직후 5분 이내라는 상세한 진술도 내놨다. 이경원 변호사는 당시 수방사 선발대가 12월 3일 오후 11시 47분경 이진우 전 사령관에게 도착상황을 보고한 점을 볼 때 이 전 사령관과 오 대위가 말하는 '첫 통화'는 ②번, 12월 4일 0시 32분 통화라며 "오상배가 명백하게 사실과 다르게 증언한 것은 맞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오 대위 증인신문 당시 주공격수로 '청력이 남들보다 뛰어난가'란 질문까지 던졌던 윤갑근 변호사는 이 전 사령관에게 "(대화가) 들릴 정도의 상황이었나"라고도 물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