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이면, 세상에서 가장 사소해 보이는 한 장면이 문득 또렷해진다. 지하철 손잡이를 붙들고 있던, 이름 모를 따뜻한 손. 그날은 퇴근 시간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누군가의 가방 모서리가 갈비뼈를 눌렀고, 뒤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내 등을 떠밀었다. 형광등 불빛이 눈 위로 쏟아졌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속이 뒤집히듯 울렁거렸다. 토할 것 같았다. 진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날, 나는 간단한 눈 수술을 받았다. 익상편(안구 내측 결막(흰자위)에서 각막(검은 동자) 쪽으로 섬유 혈관 조직이 증식하여 침범, 진행하는 질환) 제거 수술이었다. 부분 마취가 내게 맞지 않았는지, 수술이 끝난 뒤부터 계속 어지러웠다. 병원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찬 공기가 얼굴으 스쳤고, 그 때부터 속이 본격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택시를 탈 수도,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멀미가 더 심해질 것 같았다.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지하철. 하필 가장 붐비는 시간이었다. 열차 안에서 나는 사람들 틈에 끼인 채, 제대로 발을 디디지도 못하고 붕 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숨을 참았다.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만 지나가기를, 여기서 쓰러지지 않기를 속으로 되뇌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