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에게 권리가 있다'는 말에 반감을 가지던 시기를 지났지만, 미성년기 잘못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모 배우의 은퇴 논란은 이 공백을 드러낸다. 30년 전 미성년 시절의 범죄가 재소환되고, 이미 처벌이 종료된 사안을 성인기의 생존권 문제로까지 연결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 사안은 연예계 이슈로만 끝내서는 안된다. 이번 논란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아동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며, 미성년기의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를 생각케 한다. 이 논란은 아동권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왜 한국에서는 미성년기의 잘못이 이렇게까지 영구화 되는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올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국 드라마 시리즈 <소년의 시간>에 대한 여러 나라의 반응을 살펴보고자 한다. 올 여름, 독일에서 한인들과 글쓰기 모임을 하다가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드라마는 13세 소년 제이미가 같은 학교 여학생을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을 다루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터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건 드라마 자체보다, 한국·영국·독일의 반응이었다. 한국과 영국에서는 청소년 범죄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반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같은 드라마가 이렇게 다른 반응을 낳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풀면 곧바로 이번 논란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 나라의 반응 차이는 "미성년의 잘못을 어떻게 다루는가", " 아동. 청소년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하는가"를 보여주고 나아가 사회적 합의 수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국가별 반응 차이를 가르는 핵심 변수: 아동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 영국은 청소년 범죄는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다. 청소년 범죄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서 여긴다. 청소년 범죄와 교정 제도를 사회적 논의의 핵심 영역으로 다뤄왔다. 영국 청소년사법위원회(Youth Justice Board)는 청소년 처우의 원칙을 "재활·교육·사회복귀(Rehabilitation, Education, Reintegration)"로 명시한다. 이것은 아동·청소년을 '미성숙하지만 권리를 가진 시민이며 변화·회복이 가능한 존재'로 이해하는 것과 관련 있다. 그렇기에 <소년의 시간> 같은 작품은 "가해자를 미화한다"는 논쟁보다는 "제도는 적절한가?", "사회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같은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그로 인해 사회적 논쟁은 뜨겁더라도 관심의 초점은 제도 개혁에 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