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유학자들은 상공업을 천시했고, 서구의 부국강병을 야만으로 여겼다. 그런데 어떻게 그 후예들이 세계적 산업국가를 일궈냈을까? 백승종 교수는 이 역설의 답을 '하이브리드(융합)'에서 찾는다. 유학의 정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근대 산업의 동력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백승종 저자는 미시사를 일궈오면서 관련 대중 역사서를 많이 펴낸 인기 역사가이자 대중 강연자이기도 하다. 집은 평택이지만 토요일마다 촛불 집회 등으로 서울을 찾는다고 해서 지난 13일 필자의 사무실에서 긴 얘기를 나누고 이를 오문오답으로 정리해 보았다. 질문이 이어지면 작가는 답을 열강하듯 폭포수처럼 쏟아내 조선시대 관련 많은 저술을 한 기자도 신바람나듯 질문을 이어갔다. - 왜 한국의 유교적 산업사회를 논하기 위해 서구의 개신교 윤리를 분석하셨습니까? "조선의 유학자들은 상공업을 '말업(末業)'이라며 죄악시했고,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서구 산업사회와 유학자의 이상이 충돌했습니다. 유학이 산업사회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는 점을 먼저 규명해야 했습니다. 막스 베버의 개신교 윤리론에 대한 반론이 많지만, 개신교 신자들의 높은 문해력이 과학 혁명과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미국에서 청교도의 직업윤리가 정직·근면·절약을 통한 소유권을 신성시하여 자본주의의 도덕적 기반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서구의 역사를 탐구해야 한국의 특수성을 비교·조명할 수 있습니다." - 조선이 산업사회로 전환하지 못한 근본적 이유와 그렇다면 유학의 어떤 요소가 현대 한국의 산업화에 이바지했는가가 이 책의 핵심이겠군요. "유학자들에게 식민지를 만들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서구의 행위는 야만적이었습니다. 인(仁)과 의(義)를 토대로 공익을 추구하는 유교의 가르침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적 이익 추구는 양립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은 경제력이 국력에 미치는 중요성을 가볍게 보고, 상공업의 부가가치 창출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근검절약을 통한 자급자족으로 충분하다는 신념을 유지했습니다. 게다가 국방력이 허약했고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 수집 능력도 미약했습니다. 유학의 핵심 덕목인 '경(敬)'은 마음을 집중하고 성실한 태도를 뜻하는데, 이것이 산업현장에서 '일에 대한 헌신, 장인 정신, 근면성'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수기치인(자기를 닦아 남을 다스림)'의 원리는 근대 관료제와 기업 엘리트 시스템 형성에 영향을 미쳤고, 과거제도가 만들어 낸 학습과 경쟁의 윤리는 한국의 교육열과 인적 자본 형성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검소함은 역설적으로 높은 저축률을 유지하게 하여 국가적 자본 축적에 이바지했습니다. 충(忠)과 효(孝)는 기업을 '운명 공동체'로 만들어 위기 시 일사불란한 헌신을 이끌어냈습니다." - 작가님께서는 이 책의 방법론으로 '미시 사상사(Micro-History of Ideology)'적 접근을 강조하셨습니다. 도대체 '경(敬)'이나 '수기치인' 같은 추상적인 유학 개념이 어떻게 구체적인 '공장'과 '기업'의 운영 원리로 작동했다는 것입니까?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