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겨울은 매년 그렇듯 수년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이하 조류독감)의 위험과 함께 찾아옵니다. 5년 전인 2020년 12월에도 주변 농장이 조류독감에 감염됐습니다. 우리 농장은 닭들이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정부로부터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항의했고, 거부했으며, 몇 달 동안 꿋꿋이 버텼습니다. 시민단체, 수의사, 우리 달걀을 드셨던 많은 시민의 지지에 힘입어 정부에 법 개정을 촉구했고, 오랜 논의 끝에 마침내 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예방적 살처분 구역은 3km에서 500m로 축소됐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 농장의 닭들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희생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희생당했습니다. 닭들 전부는 무엇을 위해 죽었을까요.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닭들과 사업, 고객을 잃었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악몽으로부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시 일어섰습니다. 우리는 사업을 재건했고, 더 강하고 훌륭하게 키워 나갔습니다. 2년 반 동안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모든 것이 멈췄던 그 시점에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더욱 좋아지기만 했습니다. 다시 찾아온 겨울, 다시 커진 불안 몇 달 전, 한국에 겨울이 찾아오면서 조류독감의 위험도 함께 다가왔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농장의 닭들은 감염되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매년 겨울 우리는 닭들의 감염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예방 조치를 취합니다. 신발과 옷, 장갑과 마스크를 갈아입고, 바닥과 도구 등 모든 것을 매일 소독했습니다. 우리의 이런 노력과는 별개로 날이 갈수록 위협은 커져만 갔습니다. 주변 농장에서 감염돼 가축을 살처분해야 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몇 주가 흘렀지만 위험이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 듯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그 순간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주변 농장들이 조류독감에 거의 모두 감염됐고, 우리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모두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머릿속은 온통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다모클레스의 검'이 우리 농장 위에 매달려 있었고, 우리는 그 검이 마침내 떨어져 우리를 무너뜨릴까 두려워했습니다. 며칠이고 우리는 오직 이 걱정에만 사로잡혀 다른 것은 신경 쓸 수 없었습니다. 아프거나 죽은 닭을 발견할 때마다 종말의 시작일까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한 주 내내 사랑하는 닭들을 돌보느라 힘들게 일하고 걱정하느라 지친 저는 하루 쉬기로 하고 도시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기분 전환도 되고 하루쯤은 마음도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피곤했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 드디어 내 삶에 만족감을 느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닭들을 돌보는 일, 우프 자원봉사자들, 농장 소셜미디어를 관리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시골에서 동물들과 함께 사는 이 모든 것이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알았더라면 이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농장 동료의 부름에 남편과 저는 잠에서 깼습니다. 닭장 하나에서 죽거나 병든 닭들을 발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모클레스의 검이 드디어 떨어졌습니다. 남편은 서둘러 일어나 농장의 다른 직원들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했습니다. 농장에 없었던 사람들은 모두 출입이 금지됐고, 저는 집에 남아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조류독감 감염이 의심될 경우 의심 신고부터 실제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까지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