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한국 분이냐?"
미국 호텔 직원이
두 손 가득 들고 나온 것

미국 내 한류 이야기를, 빵으로 시작해 볼까요? 저는 미국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이고, 10년 넘게 단골로 다니는 빵집이 있습니다. '파네라'라는 카페인데, 커피와 샌드위치나 수프 등 간단한 음식을 팝니다. 현재 2000개 넘는 매장을 가진, 미국에서 가장 큰 베이커리 카페 체인이지요. 물론, 3000개 넘는 매장을 지닌 한국의 파리바게뜨를 비롯해, 동네 곳곳을 빵 굽는 냄새로 채우는 지역 빵집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빵 맛으로 따져도, 뉴욕에 갈 때 가끔 들르는 뚜레쥬르나 파리바게뜨에 못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 빵을 먹으며 자라온 제 입맛이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미국 내에서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빵집이나 디저트 가게가 호평 받으며 수를 늘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한류라는 커다란 물결 안에 음식이라는 새로운 물줄기가 확산해 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래도 파네라는 미국 각지에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 오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빵집에 '잘 가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살다시피 합니다. 과장이 아니라, 강의가 없는 날에는 하루 두 끼와 커피 서너 잔을 마시며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예닐곱 시간을 보내니까요. 오늘처럼 강의가 있는 날에도 수업을 마친 뒤 파네라에 와서 저녁을 먹으며 노트북을 열곤 합니다. 저는 여기서 수업 준비를 하고, 논문을 쓰거나 채점을 하고,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수다도 떱니다. 지금 이 글도 그 빵집에서 쓰고 있습니다. 지금 스마트폰 앱으로 확인해 보니, 11월 한 달 동안 이곳에서 165시간을 보냈군요. 하루 평균 다섯 시간 넘게 체류한 셈입니다. 이렇듯 자주 오고, 또 오래 머물다 보니, 이곳 모든 직원들과 친구처럼 지냅니다. 매장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직원들은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아주고, 제가 좋아하는 메뉴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줍니다. 그중 레이첼과는 10년 넘게 알고 지냈습니다. 그는 오랜 연애 뒤 최근 결혼했는데, 오늘도 변함없이 환한 웃음으로 잔을 건네며, 신랑과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노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반색하며 잘했다고 맞장구친 뒤, 어떤 언어냐고 물었습니다. "원래 이탈리아어로 시작했는데…" 레이첼은 제 뒤에 다른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긴 대화를 시작할 채비를 하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연히 듣게 된 케이팝에 홀려 한국어로 바꿨어." 스트레이 키즈가 그 운명의 주인공이라고 하네요. 올해 외국어 학습 앱 듀오링고에서 한국어 학습자 수가 이탈리아어를 누르고 6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주위에서 정확히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군요. 미국회사가 만들어 파는 한국(?) 음식들 제가 사는 곳은 미 동부의 작은 도시입니다. 외곽 인구를 더해도 40만이 안 되고,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살지 않아서 큰 한국 식료품점이나 식당에 가려면 차로 1시간 정도를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한국인으로 사는 데 큰 불편이 없습니다. 미 동부 슈퍼마켓 체인인 '웨그먼스'에서 한국 식료품을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매장의 '아시아' 코너에 가면 한국 섹션이 있고, 이곳 진열대에는 고추장, 된장, 라면, 국수, 과자 등 한국에서 수입해 온 식료품은 물론, 슈퍼마켓 자체 상표로 출시한 김치와 불고기 소스, 그리고 한국에서도 흔하지 않을 것 같은 '김치 핫소스'와 '김치 마요네즈'까지 널려 있습니다. 이곳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노래 따라 부르기)' 열기를 피해 가지는 못 했습니다. 그에 앞서 아이유의 공연 영화 <아이유 콘서트 : 더 위닝>이 찾아왔고, 더 최근에는 제이홉의 <무대의 희망>(Hope on the Stage)이 케이팝 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저도 12월 말에 개봉하는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를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작은 도시에 한국 언어, 문화, 음식이 파고들고 있다면, 미국 전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클리블랜드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한적한 호텔에서 묵게 됐을 때의 일입니다. 체크인을 하기 위해 신분증을 건넸는데, 제 펜실베이니아 운전면허증을 받아 쥔 직원이 대뜸 "혹시 한국 분이냐"고 묻더군요. 그러더니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한국 성을 많이 알고 있다"면서, 지금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언젠가 가보고 싶다며 한국 찬가를 늘어놓더군요.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