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파리는 늘 붐빕니다. 그러나 파리 7구 바렌 거리 77번지에 가면 조용한 정원을 느낄 수 있어요. 로댕 미술관입니다. 마침 지난 13일부터 로댕의 드로잉을 중심에 둔 특별전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다만 겨울에는 안전 운영 때문에 조각 정원이 2026년 1월 4일까지 오후 5시에 먼저 닫히는데요. 그래서 로댕 미술관은 "언제 가도 괜찮은 곳"이라기보다, 지금 가면 동선과 계절이 딱 맞아떨어지는 곳인 셈이지요. 버려진 귀족 저택, 로댕의 '조건'이 되다 비롱 저택은 원래 '오텔 페이랑 드 모라스(Hôtel Peyrenc de Moras)'로 불리던 파리의 도시 저택(hôtel particulier)이었습니다. 1727년부터 1732년 사이에 지어졌고, 설계자는 프랑스 건축가 장 오베르(Jean Aubert)로 알려져 있습니다. 겉모습은 고전주의 특유의 단정한 비례를 따르지만, 실내로 들어가면 18세기 프랑스가 사랑한 로카유(rocaille) 장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로카유는 말 그대로 조개껍데기(rocaille)와 바위의 굴곡을 닮은 장식이에요. 직선으로 딱 잘라 끝내지 않고, 선을 S자처럼 부드럽게 휘게 만듭니다. 무늬는 소용돌이처럼 말려 들어가고, 덩굴과 잎사귀가 얽힌 형태가 벽과 천장, 몰딩을 따라 흐르지요. 그래서 방 안을 보면 "각이 잡힌 궁전"이라기보다, 물결이 살짝 남아 있는 표면처럼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비롱 저택은 귀족 저택으로 출발했지만, 1820년부터는 '성심회(Society of the Sacred Heart of Jesus)' 수녀들이 들어와 상류층 소녀들을 위한 기숙학교(보딩스쿨)로 운영되었습니다. 그 시기(19세기)에는 학교 운영에 맞게 건물과 정원이 선보였고, 1876년에는 예배당(채플)도 새로 지어 저택 안에 교육·종교 시설 기능이 함께 들어오지요. 1904년, 프랑스의 정교분리 흐름 속에서 수녀회가 저택을 떠납니다. 그러자 비롱 저택은 한동안 텅 빈 건물이 되었지요. 매각이 미뤄지는 동안 임대료는 자연스럽게 내려갔고, 그 틈을 타 예술가들이 하나둘 들어옵니다. 장 콕토, 앙리 마티스, 이사도라 던컨,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이름들이 이곳을 임시 거처이자 작업실처럼 사용하게 됩니다. 로댕도 그 무리에 합류하지요. 로댕은 1908년, 우선 1층의 방 네 칸을 빌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1911년부터는 건물 전체를 쓰게 됩니다.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1916년에 찾아옵니다. 로댕은 자신의 작품과 드로잉, 수집품을 프랑스 국가에 기증하되, 이 저택을 보존해 '로댕의 미술관'으로 만들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그 약속은 사후에도 이어져 1919년 8월 4일, 이곳은 공식적으로 로댕 미술관으로 문을 엽니다. 로댕 미술관은 로댕이 작업하던 그 공간 자체입니다. 큰 창으로 들어온 빛이 복도를 길게 훑고, 계단을 돌아 전시실까지 이어집니다. 정원에서는 햇살과 바람이 청동 표면을 바꿔 놓아, 같은 조각도 시간대마다 다르게 보입니다. 로댕은 바로 이런 조건—빛이 들어오는 방향, 걷는 거리, 정원의 공기까지—함께 남기고 싶었던 겁니다. 정원에서 조각은 '표정'을 바꾼다 로댕 미술관의 정원은 조각을 바깥에 세워 둔 공간이 아닙니다. 조각이 '날씨와 함께' 전시되는 무대에 가깝지요. 햇빛이 강한 날엔 청동 표면이 반짝이며 윤곽이 또렷해집니다. 흐린 날엔 빛이 퍼져 형태가 부드럽게 가라앉고요. 비가 온 뒤에는 색이 더 짙어져 조각의 주름과 굴곡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같은 작품도 날짜와 시간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해가 강한 날엔 윤곽이 칼처럼 서고, 흐린 날엔 표면이 무광으로 가라앉아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지지요. 정원에서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얼굴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조각은 원래 거대한 프로젝트 <지옥의 문>에서 나온 형상으로 알려져 있지요. 혼자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사유'라는 말이 떠오르지만,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면 오히려 '결심 직전의 몸'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팔에 힘이 들어가고, 등이 깊게 굽고, 발가락이 땅을 꽉 붙잡고 있어요. 생각이란 머리로만 하는 일이 아니라, 몸 전체로 버티며 시작하는 일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저에게 로댕 미술관이 더 특별한 이유도 그 '속도' 때문입니다. 학창시절에는 빽빽한 파리 일정 사이에서 잠깐 숨을 고르던 곳이었고, 시간이 흘러 가족과 다시 찾았을 때는 하루를 느릿하게 쓰는 여행지가 되었지요. 루브르에서는 늘 사람의 흐름에 떠밀리기 쉽습니다. 작품 앞에 오래 서 있고 싶어도, 뒤에서 밀려오는 발걸음이 등을 떠미니까요. 로댕 미술관은 다릅니다. 정원을 한 바퀴 천천히 돌고, 벤치에 앉아 아이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조각의 그림자가 잔디 위로 길어지는 걸 한참 바라봅니다. 그러다 다시 실내로 들어가, 전시실 안에서 석고의 흰빛을 마주하지요. 특별히 동선을 짜 둔 것도 아닌데, 어느새 발길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