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 서울역서 매일
'엘리베이터 쟁탈전'...
미처 몰랐던 진실

연말이면 늘 그래왔듯 내가 사랑했던 것들과 용서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국가부터 일상까지 다사다난한 한 해였음에도 연말에 용서하지 못한 것보다 사랑했던 것들이 많이 생각난다는 점은 나에게는 행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말까지 사랑해 마지 않으면서도 용서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바로 GTX. 2025년 처음으로 한 해 내내 경기도민으로 살았던 내 처지와 연관이 높다. GTX 열차 개통 날, 출근길 고통이 마침내 끝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내 앞사람이 아침에 뭘 먹었는지 냄새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친밀한 거리만을 허용하는 3호선은 나에게 큰 고통이었고, 출근 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면 비싼 요금 정도는 감당할 만했다. 기대처럼 GTX는 출근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직장인들이라면 다 공감하겠지만 출근길 10분과 일상 속 10분의 질은 매우 다르고, 전자가 후자보다 귀한 법이다. 그 귀한 시간을 아껴준 게 GTX 였기에, 나는 한 해 동안 GTX를 사랑해 마지않게 되었다. 그런데 고통은 그 효율성에서 시작되었다. GTX와 함께 새로 시작된 출근길에는 3호선 - GTX - 1호선으로 두 번 환승이 필요했다. 지각을 면하기 위해서는 1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야 했고, 계획 실행을 위해서는 쉴 새 없이 지하철 내부에서도 최단 거리를 찾아 움직여야 했다. 앞의 열차 하나를 놓치면 연쇄적으로 다음 열차 탑승도 늦어지는 탓이었다. GTX의 기쁨과 슬픔 애석하게도 내 처지는 GTX를 타는 슬픈 경기도민에게 모두 적용되었다. G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안전을 위해 뛰지마세요'라고 걸려있는 대문짝만한 현수막을 모두가 가뿐히 무시하고 달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승객들의 도덕성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이 달리기엔 현실적인 문제도 섞여있다. 서울역에 도착한 GTX는 지하 60미터, 대략 지하 7층, 혹은 그보다 아래에 위치해있다. 1호선이나 4호선을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최단 거리를 열심히 계산해 봤자 경험상 10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서울역 GTX 승강장에서의 달리기란 단 두 대밖에 없는 엘리베이터 쟁탈전으로 귀결된다. 뛰지 않는다면 개찰구 바깥까지 늘어진 줄에서 영원히 도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차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하고 나면 인내심만큼 빠르게 인류애가 바닥나게 된다. 엘리베이터에 빨리 타지 않거나 개찰구에 빠르게 카드를 태그하지 않는 사람에게 보내는 노골적인 불쾌함에 점차 익숙해졌다. 내 어깨를 치며 달려가는 사람들을 멍하게 보고 있던 경험이 쌓여갔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나 또한 자주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엘리베이터 쟁탈전을 벌였다. 드디어 환승 통로에 도착해 긴 숨을 내뱉을 때 나는 나의 인성 밑바닥과 마주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나는 GTX를, 정확히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지각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