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의 향연 29] 통감부에 30개조 요구한 의병대장 허위

칼이 국가안보 등 제소임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붓이 나선다. 한말 의병이 그런 형국이다. 일제의 침략으로 대한제국 군대는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한 채 강제 해산되고 말았다. 해서 붓이 나섰다. 군사훈련도, 무기를 다룰 줄도 모르는 붓은 오로지 의기로 전선에 나섰다. 그 자신 붓이었던 백암 박은식은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의병을 정의한다. 의병이란 민군(民軍)이다. 나라가 위급할 때에 즉각 의(義)로서 분기하여 조정의 징발령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하여 적개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 민족은 본래 충의가 두터워 삼국시대 이래로 외환을 만날 때마다 의병의 적공이 가장 탁월하고 현저하였다. 조선왕조에 들어와서 선조 시대에 일본침략자에게 짓밟힘이 8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혹은 유림이, 혹은 향신(鄕紳)이, 혹은 승려들이 모두 초야에서 분기하였다. 이것은 털끝만치도 전세(田稅)의 비율로 부과하는 병역의무의 징집에 의거한 바 없이 오직 충서의 격려로서 사방에서 모여들어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히 싸운 것이다. 앞 사람이 쓰러지면 뒷 사람이 계속하여 적이 물러갈 때까지 싸우고야 말았다. 빼어난 공훈과 높은 절개는 해와 달처럼 밝게 빛나며 강산을 부식하고 영토를 회복하는데 크게 힘을 입었다. 그러므로 의병은 한국민족의 '나라의 정수'인 것이다. 한말 의병은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국권침탈이 자행되는 1905년 중반기부터 시작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은 독자적으로 혹은 연대하며 침략군에 맞섰다. 13도 통합 의병부대가 결성되어 서울진공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많은 의병 중 후기의병에 속하는 허위 의병은 1905년 조선통감부에 30개 조를 요구하였다. 허위의 통감부에 대한 30개조 요구 ① 대황제(고종)를 복위시켜라. ② 외교권을 환귀시켜라.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