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중년남성을 조롱하는 진짜 이유

정훈님이 생각하는 '올해의 단어'는 무엇인가요? 저는 단연 '영포티'입니다. 2010년대 중반에는 트렌드에 민감한 40대를 지칭하던 말이었던 '영포티'는 지금은 중년 남성을 조롱하는 일종의 멸칭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영포티' 밈(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신조어 및 콘텐츠)이 처음 쓰일 때는 젊어 보이고 싶어 하지만,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중년 남성들의 외양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자신이 멋지고 세련된 줄 아는 남성들을 놀리는 것이었죠. 스투시 모자, 솔리드 옴므 티셔츠, 나이키 신발, 오렌지색 아이폰 17 등등은 영포티의 상징이 됐습니다. 나아가 청년 남성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젊은 여성 직원에게 추근대는 남자 상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권위적인 '꼰대'들과 위선적인 군상들까지 모두 '영포티'로 지칭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문제적 중년 남성'을 비난하는 말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인권이나 페미니즘을 말하면, 혹은 단순히 자신들 입장에서 보기 싫은 나이 든 남성들을 모두 '영포티'로 부르더군요. <나이키 신발 민망해서 못 신겠다…40대 직장인의 탄식>(한국경제)이라는 기사와 같이 중년 남성들 사이에선 "이런 걸 입어도 영포티냐"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미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느냐는 중요하지 않게 된 상황입니다. 지금 청년 남성들, 정확히 말하면 청년 남성들이 많이 가는 '남초 커뮤니티'의 주류적인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영포티'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다양한 의견들에 대한 토론이나 논리적 반박을 생략하고 "영포티가 영포티했네" 식의 조롱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온라인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결국 '영포티'는 특정한 외양이나 행동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중년 남성에 대한 청년 남성의 반감이 집약되어 있는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왜 지금 '영포티'인가 그렇다면 왜 청년 남성들은 지금 시점에서 '영포티'라는 말로 기성세대를 비난하게 됐을까를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 '영포티'라는 말이 멸칭으로 쓰이게 된 시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22대 대선이 끝난 올해 하반기부터입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2030 남성과 4050 남성의 정치 성향 대비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 지지율을 살펴보면 20대 남성 24%, 30대 남성 37.9%, 40대 남성 72.8%, 50대 남성 71.5%였습니다. 현격한 차이입니다. '보수' 지지 성향의 2030 남성들에겐 이번 선거 결과는 마뜩잖았을 겁니다.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환호하는 이들도 눈엣가시였을 것이고요. 민주당 지지층의 핵심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기득권을 갖고 있는 4050 남성들에게 공격의 화살이 집중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라인에서 돌고 있는 '코리아 영포티 스타터팩'이라는 이미지는, '영포티'라는 말이 굉장히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사용되고 있다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2030 남성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 '에펨코리아' 등을 살펴보면 여권 성향의 유튜브 방송인 '매불쇼'나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영포티들이 즐겨 보는 방송이자, '신뢰할 수 없는 콘텐츠'의 대명사처럼 폄하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정치적 인식의 차이로만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정년 연장 추진·국민연금 개혁안 등에 대한 반감 등 기성세대들에게 사회적 자원이나 기회가 과도하게 쏠려 있다는 청년 남성들의 인식도 '영포티'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청년(15~29세) 고용률은 19개월째 하락중이고, 취업이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상태의 30대 인구도 31만 명을 넘어선 상황입니다. 또한 일자리를 갖게 되더라도 회사에 고연차 직원이 훨씬 많은 역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주니어'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고 승진도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니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높은 직위에 있으며, 심지어 그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4050 남성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밖에요.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39세 이후 가구주의 평균 자산은 1년 전보다 0.3% 줄었습니다. 반면 40대와 50대 가구주의 평균 자산은 각각 7.7% 늘었고, 60대도 3.2% 증가했습니다. 405060이 자산을 서서히 늘려나가는 반면에, 2030은 자산이 그대로거나 오히려 줄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