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약 70%로,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대학은 많은 청년들이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청년들이 일상을 '보낼 만한', 또는 '보내고 싶은' 공간이 되어 왔을까? 경쟁, 경쟁, 경쟁.. 각자도생의 대학 먼저 청년들이 놓인 상황에 대해 떠올려보자. 지금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안정과 불평등이 낳은 '각자도생'이다. 청년들은 학점을 챙기기 위해 경쟁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경쟁하며,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경쟁한다. 취업에 성공한 뒤에도 청년들을 기다리는 것은 핑크빛 미래가 아니라 저임금의 불안정 일자리와 '갓생'으로의 요구이다.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압박 속에서 청년들 사이의 경쟁은 끊이지 않는다. 불안정한 미래와 불평등한 소득 분배 속에서 경쟁이라는 쳇바퀴를 넘어지지 않고 달릴 책임은 개인에게 귀속된다. 쳇바퀴 속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청년들에게 서로 돌보고 연대할 여유는 찾기 어렵다.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위해 도전했다가 실패할 때 떨어질 낭떠러지가 너무 깊고 험하기 때문에 청년들은 미래를 꿈꾸기조차 어렵다. 혐오와 차별.. 각자도살의 대학 각자도생을 넘어 '각자도살'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너와 나는 '우리'가 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논의하기보다, 각자의 생존에 급급해 살아가고 있다. 각자도살의 사회에서 공동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대학생이나 소수자성을 가진 대학생은 계속해서 배제되고 만다. 대학은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고유한 삶을 누리며 살아갈 만한 공간이 되지 못했다.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기 위한 논의 또한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초부터는 여러 대학에서 인권 기구가 통폐합되거나 재인준에서 배제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이 전국 모든 대학에 보편적인 경향으로 일반화될 만큼 충분히 집계된 것은 아니며, 대학별·맥락별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개별 대학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오늘날 대학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중요한 신호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생활자치도서관의 재인준 부결, 성균관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편집위원회 정정헌의 중앙동아리 재등록 부결,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와 소수자인권위원회의 재인준 부결과 징계성 합병 및 감사위원회 신설, 경희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의 존폐 및 대체 기구 설립 여부 논의가 모두 올해 일어났다. 하지만 올해 이어진 일련의 학내 인권 기구에 대한 백래시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관심 갖지 못하고 돌보지 못하는 사회는 올해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혐오에 편승해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를 부정하는 정치인이 청년들의 지지를 받고,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어도 된다는 이야기가 토론 수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각자의 고유한 성정체성은 위협받고, 장애학생의 이동권은 보장받지 못한다. 그리고 일부 대학생들이 이러한 혐오적·배제적 담론에 동참하는 모습이 실제로 관찰되기도 한다. 다만 이것이 모든 대학생이 같은 방식으로 동참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대학마다 그러한 태도에 반대하고 대응하는 학생과 단체들도 존재한다는 점 역시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의 대학은 일상을 보낼 만한, 보내고 싶은 공간이 되지 못했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되지 못하고, 대학생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지 못하고 있다. 일부 대학생들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소음으로 취급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너와 나는 '우리'가 되지 못하게 되었을까? 대역폭의 문제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