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노인이 되고 보니, 인생에서 무용한 것은 없다

세상에 무용한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늘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쓴다. 명예를 얻기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유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중학생 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하였다. 명예도 돈도 많이 얻진 못했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살면서 보람은 느꼈다. 나는 올해 만 65세 공식 노인이 되었다. 인생을 돌아보면, 인생에서 무용(無用)한 것은 없음을 깨닫는다. 여기에 무용한 것 같은 빛과 색채어를 찾기 위해 매주 하나씩 1년 동안 여정을 이어간 사람이 있다. <무용해도 좋은>(2025년 10월 출간)을 출간한 유재은 작가다. <종이책의 위로>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한 책이다. 저자는 오로지 26년 동안 아이들의 글쓰기를 가르쳐온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문장이 모두 간결하고, 따뜻하고 잘 읽힌다. '거먕빛'으로 힘들었던 시절 불안이 밀려오면 일상이 흔들립니다. 거먕빛으로 잠식되는 하루는 버텨내기 어렵지요. '거먕빛'은 '아주 짙게 검붉은 빛'으로 저자는 '불안을 살아내다'로 표현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부정의 기운이 몰려오면 견디기 힘들다. 교대를 졸업하고 교사로 살았다. 결혼하여 아들 둘이 있었지만, 친정엄마가 육아를 맡아주셔서 힘들지 않게 보냈다. 어느 날 승진(교사에서 교감, 교장이 되는 것)할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거먕빛'이 되었다. 승진하려면 승진 점수를 채워야 했다. 대학원도 졸업해야 하고, 연수 점수도 100점이 있어야 했다. 연구대회에 참여하여 등급도 받아야 했고, 근무평정 점수도 잘 받아야 했다. 노력이 헛되어 점수를 채우지 못할까 봐 늘 불안했다. 늘 쫓기듯 살아야 했기에 일상이 바빠지고 여유가 없어졌다. 이러기를 10여 년, 나는 교감 발령이라는 목표를 이루었다. 그 10년 동안 내 마음은 검부잿빛(마른풀이나 낙엽 따위가 타고난 뒤의 재 속에 남은 불의 희미한 빛깔 : 마음과 거리두기)이 되기도 하고, 얼음빛(얼음의 빛깔과 같이 파랗고 반투명한 빛: 닫힌 마음)이 되었지만, 이겨냈다는 뿌듯함에 감빛(잘 익은 감의 빛깔과 같은 붉은빛: 꿈을 그리다)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가족이 함께하며 응원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승진을 포기하고 평교사로 행복하게 살았을 거다(괄호 안의 설명은 저자의 표현). 이 책에는 빛에 대한 다양한 색채어가 나온다. 그 색채어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때론 견디기 힘든 일도 있었지만, 가족의 위로로, 읽은 책 속 문장이나 주인공의 행동으로 위로받았다. 그래서인지 책과 관련 이야기도 많다. 나도 <무용해도 좋은> 책을 읽으며 나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힘들었던 시간도, 행복했던 시간도 모두 무용하지 않고 지금 잘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순우리말의 색채어들이 참 곱다. '가림빛, 검부잿빛, 살굿빛, 쪽빛, 꼭두서닛빛, 갈맷빛, 먼뎃불빛' 등 58개의 빛과 58개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의 지금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지나간 시간은 모두 소중하다. 저자의 이야기도, 가족 이야기도, 친구 이야기도, 글쓰기 반 제자 이야기도 다양한 빛과 함께 빛난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