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만 하는데도 공포가 온몸을 감싸는 곳

12.3 계엄이 1년을 지났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의 욕망과 욕심에서 시작된 계엄은 다행히 시민들의 제지와 차가운 아스팔트 위 빛의 혁명으로 무산되었다. 다시 대한민국이 정상을 회복하고 안정될 수 있었다는 점에는 내란에 항거하고 연대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계엄 당일, 이전의 계엄을 경험했던 세대의 공통된 생각은 언제 어디로 끌려가 소리 없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였다고 한다. 실제로 계엄을 준비한 이들은 야당 인사들과 그들의 폭정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의 목록을 만들어 일신을 가두고 고문하기 위한 장치도 준비하고 마련했다고 밝혀지고 있다. 내란 재판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감금할 건물, 각종 고문도구, 구속할 교도소 공간과 흔적조차 없이 지울 방법들까지 마련했다는 내용은 구체적이어서 공포스러울 지경이다. 권력에 의한 인권유린과 탄압, 고문에 의한 살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이곳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지금은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있다. 국가폭력의 현장에서 민주주의의 산실로 변화를 꿈꾸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지난 6월 민주화운동 기념관으로 개관했다고 한다. 국가폭력의 현장에서 민주주의의 산실로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화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없던 나로서도 무서운 이름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어느 날 소리 없이 끌려가서 죽어 나오는 곳.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 자식과 남편의 소식을 물어물어 추적하다 보니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며 자식과 남편의 면회를 하려고 철제문 앞에서 서성이는 가족들의 모습은, 뉴스로 잠깐씩 전해지는 순간에도 그 무시무시한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서울의 중심 용산구에 위치해 있지만 서측으로는 철도가 지나가고 남측으로는 미군기지 캠프킴(CAMP KIM)이 있어 주변 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시와 단절된 곳에 존재하는 요새와 같은 곳이었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검은 벽돌에 좁고 긴 창문이 촘촘히 박힌 건물, 이중창으로 되어 있어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도, 밖에서 안을 볼 수도 없다. 악명 높던 그곳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인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건립되어 아픔을 기억하며 희망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곳으로 탈바꿈 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의 핵심 시설은 역시 M2 전시관이다. 군부독재의 끔찍한 유산이 그대로 전시관이 되었다.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은 남영동 대공분실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크고 날카로운 소리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결박된 채로 비밀스럽게 감춰진 뒷문으로 향하면 철제 계단과 좁은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철제 계단에서 울리는 굉음은 본인이 위로 끌려가는지 아래로 끌려가는지 기억의 혼동을 준다고 한다. 차갑고도 두려운 소리에 공포가 온몸을 감싼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