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협과 새마을금고는 협동조합 금융기관입니다

1950년대 후반,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는 깊었다. 당시 남북한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6백만 명이 죽거나 다쳤고 도로, 교통,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1957년 미국이 원조 방식을 무상(無償)에서 유상(有償)으로 바꾸면서 한국경제는 불황에 빠져들었다. 실업률이 증가했지만,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농촌지역은 도시보다 훨씬 심각했다. 밀을 포함한 미국의 잉여농산물 수입은 농업 기반을 무너뜨려 농촌인구 대다수가 봄철 식량난(보릿고개)에 허덕이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로 인해 많은 농민이 고리대에 시달렸다.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살인적 고리대를 끊어내야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담보도 신용도 없는 이들에게 은행이 저금리로 돈을 빌려줄 리 만무하다. 대부업자의 돈을 갚으려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힘을 모으는 수밖에는 없다. 십시일반 돈을 추렴해 신용조합(아래 신협)을 만들자. 자조와 협동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자는 신용 협동조합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협은 1960년에 설립된 성가신협(부산)이다. 창립회원 27명, 출자금 합계 3400환으로 출발한 성가신협은 창립 1년 후 조합원 129명, 총 출자금 179만 환으로 늘어났고 1년간 88명에게 대부를 실행했다. 대부금은 고리채 정리, 가옥 수리, 자녀 학자금, 전세금 마련을 위한 자금으로 쓰였다. 신협은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다. 새마을금고(아래 금고)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1963년 경남 산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발족한 하둔신용조합이 금고의 효시다. 태동한 배경은 달랐지만, 신협과 금고가 지향하는 목표는 같았다. 조상 전래의 공동체 정신인 상부상조(相扶相助) 문화를 바탕으로 자금을 적립하고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어 조합원의 경제적 자립을 돕자는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