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간밤에 접촉 사고가 났다. 차량끼리 충돌한 게 아니라 램프 구간에 세워진 주황색 분리봉과 부딪친 거다. 분리봉의 재질이 플라스틱이었기에 망정이지 쇠붙이나 콘크리트였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갑작스럽게 차선을 변경하려는 차량을 피하려다 벌어진 사고다. 차선을 변경하려면 방향 지시등을 켠 뒤에 후사경을 보며 천천히 진입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옆 차선에서 불과 몇 미터 앞서 달리던 해당 차량은 차선 변경과 동시에 방향 지시등을 켰다. 급하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지만, 핸들을 꺾지 않았다면 접촉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만약 분리봉 너머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는 차선에 차량이 지나가고 있었다면, 그 차량과 충돌할 수밖에 없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분리봉과 부딪히며 본능적으로 경적을 요란하게 울렸지만, 놀람의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해당 차량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미안하다는 뜻의 비상등도 켜지 않은 채 램프 구간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통행 차량이 많지 않은 밤늦은 시간이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잠시 멈춘 뒤 후진했더니 다행히 범퍼와 부딪힌 분리봉은 오뚝이처럼 다시 섰다. 내려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고막을 찢을 듯했던 브레이크의 굉음으로 미루어 도로엔 검은 타이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을 것이다. 운전자를 보니 치밀었던 화가 가라앉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뒤 다시 원래 주행 차선으로 접어들었다. 5분쯤 지났을까. 접촉 사고를 유발했던 차량을 만났다. 맨 바깥쪽 차선에서 저속으로 운행 중이었다. 실내등을 켜고 있어서 운전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일행과 무언가를 보며 대화하고 있는 듯했다. 운전자는 머리가 성기고 희끗한 어르신이었다. 짐작하건대, 타지에서 온 고령의 부부가 낯선 길을 찾아 헤매는 중인 것 같았다. 분리봉과 부딪쳤을 땐 당장 쫓아가 창문을 내리고 욕이라도 한바탕 쏟아내고 싶었는데, 치밀었던 화가 이내 가라앉았다. 되레 '초보 운전'처럼 '어르신 운전 중'이라는 표식을 붙여 주고 싶었다. 이튿날 아침 범퍼 상태를 확인하니 딱히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꼼꼼하게 살펴야 눈에 띌 정도의 흠집만 몇 곳 남아 있었다. 범퍼란 흠집투성이인 게 정상이고, 다친 곳도 없으니 딱히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사고 당시엔 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다. "번거롭더라도 신고하세요. 그래야 어르신들이 핸들을 잡지 않아요."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