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남편과 천변을 따라 산책했다. 쌀쌀했던 공기가 오늘은 햇살을 따라 슬며시 영상으로 올라왔다. 천은 유난히 반짝이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송년회로 지난 주말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온 남편은, 도시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날씨가 너무 좋네. 천도 너무 예쁘고. 슬로우 모닝이 삶의 질을 높인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아." 산책을 마치며 남편이 아침의 감동을 건넸다. "맞아, 너무 좋긴 한데... 도시는 도시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바쁘게 돌아가잖아. 이렇게 여유롭게 살아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 "맞아.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 '하나도'에 강한 힘을 준 남편의 말에 살짝 놀랐다. 늘 긍정적인 방향을 찾는 남편의 '모르겠다'는 말에는 진짜 고민이 담겨있었다. 나 역시 모를 리 없는 것이다. 한창 활동해야 할 40대 후반의 나이에 이렇게 여유를 누리며 사는 것에 만족하면 되는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야 할 아이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답 없는 질문이 아이들이 자랄수록 더 자주, 더 무겁게 찾아온다.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작은 규모의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20여 명의 친구들과 한 반으로 지낸다. 아담하고 평화로운 학교다. 아이들은 나름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지만, 학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숙제도 없고, 일기 쓰기도 없고, 학업 성취도를 확인할 길도 없다. 하루에 고작 문제집 몇 쪽 풀면서 "내가 우리 반에서 공부 제일 많이 해"라고 불평하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야, 서울 애들은 지금 다 학원 갔어. 너도 학원 다닐래?"라며 효과 없는 겁을 주며 감정을 풀어낼 뿐이다.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은 학습 자극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경쟁이라곤 없다. 이 평화로운 단조로움이 이 나이 아이들에게 적당하다 믿다가도 한국 사회의 치열함이 자각될 때면 마음이 흔들린다. 지인 자녀들의 능력을 전해 듣기라고 하는 날엔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부모의 선택으로 아이들이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안해지기도 한다. 우연히, 자연스럽게 접하며 넓어지는 세계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문화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도 아쉽다. 더 깊은 공부의 세계가 있다는 것, 더 다양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