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대한항공 마일리지 통합안 또 ‘퇴짜’

“보너스 좌석·사용처 등 불충분” 소비자 편익 고려한 보완 요구 대한항공이 제출한 아시아나항공과의 마일리지 통합안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두 번째 퇴짜를 맞았다. 여전히 소비자 편익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한항공은 또 ‘좌석 수’를 유지하라는 공정위의 명령을 어겼다가 60억원에 이르는 이행강제금도 부과받았다. 고객 편의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이윤 만능주의’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공정위는 22일 대한항공에 “마일리지를 이용한 보너스 좌석과 좌석 승급 서비스 공급 관리 방안을 보완해 1개월 이내에 다시 보고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6월에도 “마일리지 통합 비율의 근거가 미흡하다”며 대한항공이 제출한 통합안을 반려했다. 이후 대한항공은 지난 9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를 1대0.82 비율로 통합하고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의 가치를 10년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수정안을 제출했지만 또다시 제동이 걸린 것이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대목은 ‘마일리지 사용처’다. 마일리지로 보너스 좌석 구매나 좌석 승급이 가능하더라도, 실제 항공사가 보너스 좌석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거나 물량을 제한하면 소비자 선택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즉 공정위는 형식적인 통합이 아니라 통합 이후 마일리지를 실제로 쓸 수 있는 환경을 얼마나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공정위는 “마일리지 통합 방안이 전 국민적 관심 사항인 만큼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면서 “이런 관점에서 통합 방안을 보다 엄밀하고 꼼꼼하게 검토해 궁극적으로 모든 항공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이 승인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공정위는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마일리지 전환 비율’ 자체는 문제 삼지 않았다. 대한항공이 제출한 통합안에 따르면 비행거리에 따라 적립되는 ‘탑승 마일리지’는 100% 전환되지만, 신용카드 적립 등으로 쌓은 ‘제휴 마일리지’는 아시아나항공에서 대한항공으로 옮길 때 82%만 인정된다. 양사의 제휴 마일리지의 시장 가치가 1마일당 3~4원 정도 차이가 난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대한항공 고객이 역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조치이지만, 아시아나항공 고객은 마일리지를 전환할 때 손해를 본다고 인식할 수 있다. 공정위가 소비자가 마일리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하라고 요구한 배경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대한항공의 잔여 마일리지 규모는 약 2조 7937억원에 달했다. 공정위의 이번 ‘반려’ 결정에는 ‘공정 경제’를 강조하는 주병기 공정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9월 대한항공이 제출한 수정안에 대해 “공정위가 제시한 원칙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며 의견 수렴 절차를 개시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주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위원들은 이를 뒤집고 보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측은 “관련 사안을 면밀하게 재검토하고 심의에 성실히 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이날 공정위가 기업결합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부과한 ‘좌석 수 축소 금지 의무’를 위반해 또 제재받았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의 공급 좌석을 2019년 대비 약 70% 수준으로 줄인 것을 시정조치 위반으로 판단하고 약 64억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대한항공 58억 8000만원(91%), 아시아나항공 5억 8000만원(9%)씩이다. 이행강제금은 공정위가 부과한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내리는 금전적 제재로, 과징금과 유사하다. 두 항공사가 기업결합과 관련해 공정위 제재를 함께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은 2020년 11월 시작돼 지난해 12월 최종 승인됐다. 당시 공정위는 기업결합 승인 조건 중 하나로 “연도별 공급 좌석 수를 2019년 같은 기간 좌석의 9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두 회사가 지난해 12월 12일부터 올해 3월 28일까지 ‘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에서 공급한 좌석 수는 8만 2534개로 2019년 같은 기간 11만 8728개의 69.5% 수준에 그쳤다. 시정조치 기준인 90%에 20.5% 포인트(3만 6194석) 못 미친 것이다. 공급 좌석 수는 해당 노선에 투입되는 항공기의 공급 좌석과 항공기 운항 횟수를 곱해 산정한다. 항공사가 좌석 공급을 줄이면 탑승률이 높아지고, 남은 좌석을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하게 된다. 항공사의 좌석 수 축소가 사실상 ‘꼼수 운임 인상’인 셈이다. 운임 인상분은 모두 이용객이 부담해야 한다. 앞서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8월에도 ‘좌석 평균 운임 한도 초과 금지’를 위반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이행강제금 121억원을 부과받고 검찰에 고발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1분기부터 ‘인천~바르셀로나’,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로마’ 등 노선에서 운임 인상 한도(2019년 평균 운임+물가상승률)를 1.3%~28.2% 초과해 총 6억 8000만원을 더 받아 챙겼다. 기업결합 과정에서 경쟁당국이 내린 시정조치를 위반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통합 항공사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근영 한국교통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항공운송업자인 대한항공은 국토교통부와 약속한 노선과 공급 좌석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면서 “통합항공사 출범 이후 외항사와의 경쟁이 본격화하는 만큼 소비자 편익을 저해해 이익을 늘리는 안일한 영업 전략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두 항공사의 시정조치 준수 기간인 2034년 말까지 시정조치 이행 여부를 면밀히 점검해 항공 소비자 권익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측은 “공식 의결서 수령 후 처분 결과에 대한 구체적 사유와 대응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