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보호막 상실 앞에서 찾은 정년 후 생존 전략

이미 여러 해가 지난 일이지만, 임금피크 이후 첫 월급날은 잊히지 않는다. 줄어든 월급은 변명할 틈도 없이 냉정했다. 중요한 건 10%라는 수치가 아니었다. 그 10%는 내 노력과 상관없이, '공식'이라는 이름으로 잘려 나간 몫이었다. 통장에 찍힌 건 10%였는데, 마음은 '바닥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생각은 단순했다. 임금피크는 월급이 줄어드는 제도가 아니라, 회사 안에서 내 이름이 '싸지는' 제도라는 생각이었다. 회사는 "공식적인 조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달랐다. 정년이 다가올 수록 거세진 상실감의 강도 약속보다는 통보에 가까웠다. 문제는 그 통보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봉은 90%, 80%… 결국 60%까지 내려갔다. 그때부터 나는 회사 안에서 '필요한 사람'에서 '있어도 그만인 사람'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분위기도 달라졌다. 승진은 완전히 막혔고, 회의에서 내 몫은 빠른 속도로 가벼워졌다. 후배들이 대놓고 멀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내 주변의 소리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부탁이 줄고 점심 약속이 줄었다. 거창한 배제가 아니라 조심스러운 거리였다. 그 거리감이 은근히 마음을 닳게 했다. 돈도 돈이지만 관계의 온도가 식는 일이 더 아프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때의 경제적·심리적 상실감은 정년이 다가올수록 해마다 강도가 세졌다. 퇴직은 어느 날 문이 닫히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전에 이미 시작되는 변화가 나타난다. 월급이 줄고, 역할이 줄고, 나를 필요로 하는 시선이 줄어든다. 이런 과정이 시작되면 스스로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내 실력 값이었나, 회사 간판이 붙여준 값이었나." 임금피크는 그 질문을 가장 먼저, 가장 구체적으로 깨닫게 만드는 제도였다. 이 무렵부터 강사로서의 나도 흔들렸다. 강단 위에서 여전히 매끄러웠고 강의 반응도 좋았다. 그러나 내려오면 묘한 의심이 따라붙었다. '이 강의는 회사가 뒤에 있어야만 굴러가는 걸까.' '퇴직 후에도 이 경험은 새로운 현장에서 그대로 먹힐까.'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