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서울대에도 ‘고시반’ [횡설수설/신광영]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와 80년대 중반 서울대 도서관에선 고시용 수험서를 대놓고 펼치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행정고시’ ‘사법시험’ 같은 문구가 큼직하게 박힌 문제집을 볼 때면 주변 시선을 의식해 신문지나 책 커버로 표지를 가리곤 했다. 시위 중 잡혀가는 학생들이 많았던 그 시절, 최고 국립대에 다니는 혜택을 누리면서 고시 공부에 매달리는 건 개인의 영달을 꾀하는 것으로 비쳤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까지도 서울대는 출세보다 학문의 전당을 지향해야 한다는 학풍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서울대 고시생’이 부쩍 늘었다. 학교 간판만으로 대기업 입사와 평생직장이 보장되던 공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던 시기다. 법대 고시 과목 수업에 인문대생, 사회대생, 공대생들이 몰려들어 “서울대가 거대한 고시 학원이 되고 있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 교수들 사이에선 “서울대는 고시 합격생을 많이 내는 대학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를 배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