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여당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에 맞서 부랴부랴 내란재판부 예규를 만들었지만 핵심 내용이 다수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3대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를 줄줄이 기각했던 영장전담 법관에 대한 내용이 없는데다, 재판 중계와 재판 기간도 예규에는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신뢰가 무너진 무작위 배당을 고집해 제2의 지귀연 재판부가 나올 가능성을 차단할 대안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2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한 내란재판부법에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어 법안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대법원 예규에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무작위 전산배당'입니다. 법원행정처는 위헌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서라고 강변하지만 실은 조희대 대법원이 재판의 주도권을 가지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이 강합니다. 이미 지귀연 재판부가 내란 재판을 맡은 과정이 드러나면서 무작위 배당의 신뢰는 깨진 상태입니다. 당시 내란 사건 배당을 앞두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장들이 회의를 열어 배당 문제를 논의했는데,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는 밀실 결정이었다는 뒷말이 나옵니다. 당시 14개 형사부 가운데 이런저런 이유로 5개부가 전산배당 대상에서 제외됐고, 결국 경제·식품·보건 사건을 주로 맡았던 지귀연 재판부가 내란 재판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이에 앞서 지귀연 재판장은 지난 2월 법관 인사에서 재임 2년이 지나 교체 대상이었지만 직전에 재판장 교체 주기를 3년으로 늘리도록 내규가 개정돼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게다가 내규 개정으로 배석 판사들은 교체 주기가 2년으로 늘었는데도 지귀연 재판부 배석 판사들은 두 명 모두 1년 만에 바뀌었고, 그 자리는 낮은 경력의 판사들이 차지했습니다. 무작위 배당의 불투명성과 이례적인 인사가 의문을 키우는 상황입니다. 사정이 이런지라 예규에 따른 내란재판부 무작위 배당도 공정한 진행에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미 조희대 대법원장의 뜻대로 인사가 이뤄진 상태이고 내년 2월 또 인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또 어떤 꼼수를 쓸지 모른다는 걱정이 팽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 헌정을 훼손한 내란에 대한 심판이라는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기계적인 무작위 추첨을 통해 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법적, 역사적 사명감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 전산 배당에 앞서 판사들이 "이 사건은 내가 맡는 게 적절치 않다"는 식으로 의견을 내면 반영되는 사례가 종종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뺑뺑이'로 뽑힌 판사들은 내란 재판에 대한 소명 의식보다는 윗선이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위험이 없지 않습니다. 반면에 민주당이 22일 수정한 법안은 사실상 판사회의에 내란전담재판부 구성을 맡김으로서 인사 고과나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헌법이 정한 법리와 원칙에 따라 심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