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학교는 영화 한 편으로 시끄럽다. <3학년 2학기> 단체 영화 관람 후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해당 영화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삶을 다룬 영화였다. 이 영화 선정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취업 관련 부서와의 논의 과정에서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끝내 모두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더 신중하려 했다. 영화 상영 전 사전 설명을 통해 영화 속 장면을 학생 개인의 미래와 동일시하지 않기를 당부했고, 감상평 대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드러나도록 했다. 보다 구체적인 과정은 이전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 "왜 우린 뉴스에 안 나오죠?" 9월만 되면 맴도는 고3 아이의 질문( https://omn.kr/2ffp8) - 취업담당부서는 꺼린 영화, 그걸 본 고교생들의 공통된 반응 (https://omn.kr/2g724) 하지만 나는 이 시끌벅적한 논란이 오히려 반갑다. 아무런 파동도 없는 고요한 학교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부딪히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학교가 훨씬 건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갈등은 살아있음의 증거다. 민주주의가 학교라는 현장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어떤 교사는 "내 삶이 그대로 투영된 것 같아 울컥했다"며 공감을 전했다. 그는 직업계고 출신 교사다. 다른 교사는 "왜 이런 편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영화를 학교에서 단체로 봐야 하느냐"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는 "기업의 어려움이나 산업 발전의 맥락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 제기 역시 논의의 일부다. 이 영화를 출발점 삼아 더 넓은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 감상평 쓰기 대회에 제출된 글들 속에는 찬사와 거부감이 팽팽하게 맞서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교사와 학생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한 단어가 바로 '불편함'이었다는 사실이다. 먼지 쌓인 장학 자료와 낡은 이분법 우리는 왜 이토록 불편해하는 것일까. 그 근원을 따라가 보면 우리 교육의 뼈아픈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노동권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교사들이, 머지않아 노동자가 될 학생들에게 노동인권을 가르쳐야 하는 역설적인 현실 말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풍요를 누리며 살면서도, 그 '부(富)'를 만드는 근간인 '노동'을 언급하는 순간 불편한 이념의 프레임부터 떠올린다. '노동'은 우리 교실 안에서 오랫동안 금기의 대상이었다. 교실은 사회의 거울이다.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는 것이 우리가 마주한 한국 사회의 민낯 아닌가. '노동'을 곧 '투쟁'이나 '위험한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이 낡은 이분법은 우리의 무의식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노동을 가르치라는 '제도'는 생겼을지언정 노동을 존엄하게 말하는 '문화'는 학교 안에 끝내 뿌리내리지 못했다. 제도는 그럴듯하다. 교육청은 노동인권 교육을 조례로 정하고 해마다 방대한 분량의 장학 자료를 학교로 보낸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자료들은 교무실 한구석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노동을 불편해하는 공기' 속에서 그 귀한 가치들은 신학기가 되면 조용히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아무도 일부러 버리지 않는다. 꺼내 들지 않을 뿐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