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미룬 일 떠맡은 사람, 이들은 어떻게 '기적' 만들었나

1960년대는 근대화를 추진했다고 한들 가난했던 시절이다. 한국 전쟁 이후 국토는 잿더미가 됐고, 국민들은 전쟁의 참화가 채 가시지 않은 국토 속 기생충과 전염병, 영양결핍으로 시름했다. 공중보건서비스가 '언감생심'이던 시절이다. 병원은커녕 공중보건서비스조차 턱없이 부족하던 시기를 지나서이기 때문일까. 한국에서는 지금도 '공중보건서비스'라고 하면 대부분 국가를 떠올린다. 실제로 가난하고 인구 대부분이 적절한 공중위생을 누리지 못했던 시절, 한국의 보건소와 공공병원은 공중보건서비스를 필요에 따라 공급했다. 가족계획과 기생충 예방, 전염병 예방과 관리 등의 사업은 보건소의 기틀을 마련했다. 연령대별로 그 모양은 달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왼팔에 바코드처럼 가지고 있는 주사 자국은 국가 공중보건 사업의 흔적이다. 흔히 '불주사'라고도 불리는 결핵 예방접종(BCG) 자국이다. 전쟁 이후 결핵 환자가 급증했을 뿐 아니라, 1960년대까지 사망원인 순위 1~2위로 추정되고 있어 국가적으로 '관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54년 결핵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350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2024년 사망원인 1위인 암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174.3명인 것과 비교해도 매우 높다. 당시 결핵에 대한 국가관리는 국제 원조의 주요 조건이 되면서 국가 공중보건 사업의 최우선 과제로 자리매김했고,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보건소가 중심이 되어 '전국민'에게 예방부터 교육, 진단과 치료까지 무료로 지원한 거의 유일한 질병이었다[1]. 지금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생후 4주 이내 결핵 예방접종(BCG)을 받고, 결핵 고위험군은 주기적으로 (잠복)결핵 검사를 받는다. 진단 받은 활동성 결핵 환자와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은 국가 감시체계에 등록되어 결핵을 조기에 발견하고, 필요시 치료를 완료하도록 체계적으로 관리받는다. 빈곤과 밀접하게 연관한 만큼 노인, 외국인, 이탈주민, 홈리스 등 '취약계층'에 대한 체계도 견고하게 마련되어 있다. 나열한 대부분의 서비스는 국가의 재정을 사용하므로 국민과 특별 대상자라면 '무료'다. 민간-공공협력 결핵관리사업 결핵은 정해진 치료를 완결하면 90% 이상 완치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예방과 진단과 함께 6개월 기간의 치료를 완료한 환자의 숫자가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 지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보건소와 인력의 부족은 실제로 낮은 결핵 치료 시작률과 완료율이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환자들과 국민들의 불만은 보건소로 향했다.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 이후 민간 병원에서도 결핵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2000년대 중반에는 결핵 치료기관 선호도 조사에서 민간병의원(77%)이 보건소(23%)를 앞지르게 되었다. 민간 병의원의 결핵 치료는 국가 관리 대상이 아니었던지라 그렇다고 당시 민간 병의원의 결핵 치료 결과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결핵 발생 감소 속도가 2000년 이후 더뎌졌고, 뉴밀레니엄 시대에 OECD 국가 가운데에서는 여전히 결핵발생률과 사망률이 1위라는 사실은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했다. 정부는 보건소에 충분한 여건을 마련하기보다는 '민간' 병의원을 내세웠다. 국제보건기구(WHO)의 권고, 긍정적이었던 시범사업의 결과, 국민들의 선호, 접근성과 형평성 향상 등을 근거로 정부는 2006년, 결핵 퇴치를 위한 '결핵 공공-민간 협력 모델(PPM)'을 도입하고, 2007년 시범사업을 거쳐 2009년 결핵 관리를 위한 주요 정책으로 정착시켰다. 2024년 기준 보건소의 결핵 신환자 분담률은 1%가 되지 않으며, PPM 의료기관과 PPM 외 의료기관에서 각각 76.5%와 22.5%의 환자를 관리하고 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