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에 세운 그네 하나, 흔들린 만큼 깊어집니다

'그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림책의 첫 페이지, 첫 문장이다. 바다 바로 앞, 늘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그네가 있다. 누군가 찾아오지 않아도 흔들림을 멈추지 않고, 어떤 계절에도 조용히 사람들을 기다리는 자리. 브리타 테켄트럽의 그림책 <삶이 머무는 자리, 그네>는 한 자리에서 흩어지고 모여드는 삶의 결을 고요한 빛처럼 포착해 낸 작품이다. 이 책의 글과 그림을 모두 빚어낸 작가는 독일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인 브리타 테켄트럽. 빛과 그림자의 호흡을 따라 영화처럼 흐르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삶이 머무는 자리, 그네>에서도 그녀의 감각은 온전히 드러난다. 날이 저물어 바닷물이 은빛으로 변하는 순간, 비가 지나간 뒤 공기 속에 남은 냄새, 여름밤의 열기와 아이들의 웃음이 남긴 잔상을 말보다 이미지로 전한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카메라가 천천히 흔들리며 그네와 사람, 바다 사이를 부드럽게 옮겨가는 느낌이 남는다. 그림 자체가 움직임을 품고 있어 읽는 이의 마음도 그네를 탄 것처럼 함께 흔들린다. 그네라는 자리의 의미 책 속 그네는 놀이기구가 아니다. 삶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이 깊어지는 자리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공간이며, 함께 있어도 침묵을 허락하는 평온한 장소다. 아이와 어른, 새로 온 이방인과 오래 머물던 사람, 기억 속 인물과 이제 막 등장한 얼굴들이 모두 이 자리에서 출발해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온다. 유치원에 가기 전, 할머니와 함께 스무 번을 세며 그네를 타던 한 아이가 있다. 그네를 타던 그 아이는 이제 딸의 손을 잡고 똑같은 숫자를 세며 할머니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네는 늘 그곳에 있지만 사람은 흘러가고, 흘러간 시간은 다른 모습, 다른 이름으로 돌아온다. 책은 이 순환을 아주 담담하게, 그러나 일상의 자리가 삶 전체를 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손자 로리와 그네를 타던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의 그네는 바닷가가 아닌 동네 놀이터에 있다. 미끄럼틀과 철봉 사이, 오래 밟혀 윤기가 사라진 모래 위 그네에서 손자는 발을 차며 웃는다. 아이는 그저 놀고 있을 뿐인데, 그 순간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자꾸 겹쳐졌다. 책 속 그네는 삶의 이야기가 오래 머무는 자리였다. 묻고 싶은 말들을 품어 주는 자리였다. 그림 속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저런 그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이의 등을 밀어주던 손을, 잠시 내려 놓고 가만히 앉아 흔들리기만 해도 괜찮은 자리.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천천히 생각할 수 있는 자리. 그런 자리가 있다면 마음의 깊이가 조금 더 부드럽게 정리될 것 같았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