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줄이 먼저 길어집니다. 공항 보안 검색대 앞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고, 백화점 포장 코너에는 선물 상자가 쌓입니다. 케이크 픽업 시간에 맞춰 서두르는 사람들도 보이지요. 반짝이는 장식보다 더 연말을 실감하게 하는 건, 이렇게 "기다림이 늘어나는 풍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틈에서 저는 도시를 버티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밤을 지키고 길을 열고 약속을 이어 주는 손들 말입니다. 로댕 정원에서 <지옥의 문>을 잠시 뒤로하고 <칼레의 시민들> 앞에 서 봅니다. <지옥의 문>이 인간 내면의 욕망과 죄를 응시한다면, <칼레의 시민들>은 현실의 고통 앞에서 드러나는 용기와 존엄을 보여줍니다. 로댕은 이 장면을 영웅담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망설임과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얼굴'을 그대로 남깁니다. 여섯 사람의 표정은 하나도 같지 않습니다. <칼레의 시민들>은 고통 속에서도 존엄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기록한 조각입니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존엄 1347년, 백년전쟁 한복판에서 프랑스 항구 도시 칼레는 영국군의 포위를 거의 1년 가까이 버텼습니다. 식량은 바닥났고 공포는 일상이 됐습니다. 시민들은 끝내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가혹한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도시를 살리고 싶다면, 시민 여섯 명을 내놓아라. 그들을 처형하겠다"라고요.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칼레에서 영향력이 있던 이들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상인과 법률가, 귀족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여섯 명은 목에 밧줄을 걸고 맨발로 자루옷을 입은 채 성의 열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왕 앞에 섰습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은 바로 그 장면을 조각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여섯 명의 남자가 목에 밧줄을 걸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어디론가 향합니다. 맨 앞에 선 피에르 드 위상(Pierre de Wissant)은 슬픔과 두려움이 섞인 얼굴로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걸어갑니다. 그는 뒤를 따라오는 동생 자크 드 위상(Jacques de Wissant)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는 듯 보이지요. 그 옆에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절망에 빠진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우는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앙드레위 당드르(Andréi d'Andres)입니다. 가장 젊은 장 드 피엥스(Jean de Fiennes)는 겁에 질린 듯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고요. 가운데에는 고개를 숙인 노인이 있습니다. 그는 여섯 시민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Pierre)입니다. 그의 오른쪽에는 성의 열쇠를 손에 꼭 쥔 장 데르(Jean d'Aire)가 서 있는데, 표정에는 비장한 결심이 어려 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