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을 실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조건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는 단순한 도덕담처럼 보이지만, 공적 권력과 제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신뢰가 단번에 무너진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반복되는 거짓과 그에 대한 무의식적 허용과 방치가 누적되면서, 어느 순간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지점에 이른다는 데 있다. 신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축적되지만, 일단 붕괴된 이후에는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회복'의 대상이 아니라, 훨씬 더 큰 비용과 노력을 요구하는 '재건'의 문제가 된다. 특히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에게 공적 신뢰는 단순한 평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 신뢰를 바탕으로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기관과 그 구성원들은, 시민이 부여한 신뢰를 소모 가능한 자원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지탱하는 기반으로 인식하고 그 무게를 더욱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문제의식을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최근 법원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였다. 나는 지난 12월 9일부터 이 공청회에 패널로 참여해 상고제도 개편과 대법관 증원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지켜보았다. 형식적으로는 제도 설계에 관한 토론이었지만, 논의의 밑바탕에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상당히 약화되었다는 공통된 인식이 깔려 있었다. 왜 지금 이 논의가 이토록 거세게 제기되는가를 묻지 않으면, 어떤 개편안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학자가 사법개혁을 고민하는 이유 사법부는 비선출 권력이지만,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권력 분립 구조에서 핵심적인 위치와 위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권위는 선거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정치이론가 로버트 달(Robert Dahl)이 지적했듯이, 사법부의 권위는 민주적 선거가 아니라 국민적 승인, 다시 말해 사회적 수용성에서 나온다. 따라서 법원이 지속적으로 정치·사회적 기대와 어긋나는 방식으로 기능할 경우, 그 법적 권위 역시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판사의 개인적 자질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판단의 일관성, 절차적 공정성, 그리고 "왜 이러한 판단이 내려졌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투명성이 결합될 때 비로소 제도적 신뢰가 형성된다. 그러나 최근 여러 조사에서 드러나듯, 우리 사회에서 법원에 대한 신뢰는 이러한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특정 판결 한두 개에 대한 단발적 불만의 결과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높아진 국민의 권리의식과 복잡해진 사회적 갈등 구조에 비해 현행 사법제도가 전반적으로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보다 구조적인 의문에 가깝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수록, 국회와 대통령 같은 선출 권력은 사법개혁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정치학자 제프리 스테이턴(Jeffrey K. Staton)은 이를 '사법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political environment)의 변화'로 설명한다. 그의 멕시코 연구에 따르면, 사법부는 법적으로 독립적일지라도 정치권·언론·여론의 협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판결을 실질적으로 집행하기 어렵다. 그는 이를 집행 가능성(enforcement capacity)이라 부르고, 이를 떠받치는 정치권·언론·시민사회의 결합을 집행 연합(enforcement coalition)이라 명명했다. 멕시코 사례가 보여주듯, 사법 신뢰가 낮아질수록 정부는 법원에 더 많은 개입을 시도했고, 그 결과 사법부는 정치적 압력에 취약해지며 독립성이 흔들리는 악순환에 빠졌다. 사법부 신뢰의 붕괴는 곧 사법부를 보호해 주던 사회적 완충지대를 허무는 결과를 낳는다. 이 점에서 사법개혁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나 인원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는 정치적 과제이기도 하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