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이런 위험을 숨겨서 다음 세대를 불안하게 하지 마십시오

내가 사는 동네의 공기, 매달 받는 전기요금 고지서, 아이들의 미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에너지 정책의 결과로 매일 체감된다. 폭염·집중호우·가뭄·산불·미세먼지가 반복되는 지금,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위험'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기후 이상'이 아니라 새로운 기후 체제(New Climate Regime) 속에 들어섰고, 이 변화는 자연현상을 넘어 정치·경제·산업 전략과 사회정의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작동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2050 탄소중립과 2030·2035 감축 목표를 아무리 강조해도, 전력·산업·수요관리·지역정의가 하나의 실행 로드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목표는 공허해진다.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국민주권'은 에너지정책에서도 실체를 가져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지역균형, 경제안보, 세대 간 책임이 걸린 에너지정책을 여전히 전문가·산업계의 프레임 속에서 결정한다면 신뢰는 무너지고 갈등은 커질 뿐이다. 한국 전력 시스템은 석탄과 원자력 발전 중심의 중앙집권형 구조 위에 설계됐다. 과거에는 단가와 공급 안정성이 장점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다. 에너지의 혜택과 피해가 지역 간 불균형하게 배분되고, 발전 과정의 위험과 폐기물은 미래세대에 전가된다. 무엇보다 대규모 기반시설 중심의 시스템은 경직되어 기술·시장·산업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제 에너지정책은 단순히 "전기를 더 생산하자"가 아니라, 어떤 에너지 체제로 전환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위험과 비용을 떠안는지까지 묻는 민주주의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노후 원전 연장의 중단,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필요성 그런 점에서 '원전 신화'는 이미 무너졌다. 원자력 발전은 오랫동안 '깨끗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이라는 이미지로 유지돼 왔지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원전이 결코 통제 가능한 위험만을 가진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한국에서도 노후 원전 수명 연장 논의 과정에서 사업자 편의와 규제기관의 안일함, 전문성 집단에 대한 불신이 누적되며 사회적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다. 특히 40년 가까이 운영된 노후 원전의 연장은 "잘 관리하면 된다"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다. 배관·전선·부품의 노후화는 특정 설비 하나를 교체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사고는 늘 예상 밖의 지점에서 발생한다. 더구나 시대가 변하며 과거에는 고려되지 않았던 위험이 새롭게 등장했다. 원전 주변 지역의 도시화로 상주인구는 늘었고, 기후변화로 해수 온도와 설계 기준의 전제가 흔들린다. 최근에는 수중 생물 유입 등으로 가동 중단이 발생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나아가 드론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충돌 위험, 군사적 위협처럼 설계 당시 상정하지 않았던 위험까지 현실이 되었다. 이런 변화된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노후 원전 연장을 추진하는 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민 안전을 후순위로 미루는 행정의 문제다. 이재명 정부가 정말로 '국민주권'을 말한다면, 노후 원전 수명 연장 절차의 전면 재검토와 중단, 신규 원전 추진의 백지화, 원전 안전성과 경제성,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비용의 투명한 공개, 그리고 책임 소재의 명확화가 최소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탈석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 전략이어야 한다. 석탄 발전은 기후위기와 미세먼지, 건강 피해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이며,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 주민에게 피해가 집중된다. 그렇다면 정책의 핵심은 단순히 석탄 발전을 줄이는 선언이 아니라, 2030년까지 정의로운 탈석탄 계획을 구체적인 로드맵으로 확정하는 데 있다. 여기서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자와 지역경제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안전망, 직무 전환 교육, 지역기금과 같은 실질적 장치를 포함해야 한다. 탈석탄은 환경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이자 복지정책이며, 무엇보다 지역정의의 문제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