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동화가 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다. 이 동화는 겨울, 가난, 연민과 나눔을 이야기한다. 가정은 물론 학교 교실에서 '배워야 할 동화'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읽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동화를 읽은 뒤 아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왔는가다. <성냥팔이 소녀>는 흔히 '가난한 아이의 슬픈 이야기'로 읽힌다. 그리고 그 감정을 나누기 위해 뒤따르는 질문이 있다. 가장 흔한 질문은 이렇다. "만약 성냥팔이 소녀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이들에게 어려운 처지에 처해 볼 것을, 그래서 그 입장에 공감하기를 기대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이 질문이 반복될수록, 우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야기의 초점은 사회와 어른의 책임에서 멀어지고, 대신 아이 개인의 선택과 판단으로 옮겨간다. 성냥팔이 소녀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보다 그 상황에서 무엇을 '더 잘했어야 했는지'가 중심이 된다. 질문 하나로 책임의 방향이 바뀌는 셈이다. 교육에서 질문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질문은 생각을 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건이 일어나게 한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동시킨다. 질문은 질문자가 예상한 답의 방향대로 설계될 수 있다. 더 까다로운 점은, 질문자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때다. <성냥팔이 소녀>를 읽고 우리가 반복해 온 질문들은 순수한 의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 의도와 달리, 질문들은 소녀가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폭력과 방임, 가난과 죽음이 일어난 책임은 아이에게 전가된다. 가장 흔하지만 가장 위험한 질문은 여전히 이것이다. "내가 성냥팔이 소녀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이 문제를 만드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문제의 원인이 개인의 선택으로 이동한다. 교사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아이들의 사고는 보호의 부재나 구조적 결핍에서 벗어나 '그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로 흐르기 쉽다. 실제 교실에서는 이런 반응이 나온다. "도망쳤으면 살았을 것 같아요."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