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고 곧 새해가 열린다. 2025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여느 연말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지난 1년을 되돌아본다. 2024년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위기 앞에서 얼마나 단단하게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시간이었다. 여의도와 광화문을 수놓았던 수많은 촛불, 추운 겨울밤 광장에 선 시민들의 체온, 일터와 가정에서 다 함께 외친 주권재민의 함성, 계엄의 불법성을 따지고 제도적 수습 과정을 이끈 국회, 탄핵 과정에서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용기 있게 찬성표를 던진 소수의 결단 등은 한국 정치에서 공론의 장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 값진 경험이었다. 계엄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태도와 집단적 절제는 민주주의가 단지 헌법이나 제도적 장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적 선택과 책임 있는 행동 속에서 살아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단호함 속의 절제 거리의 집회와 광장의 외침은 단호했으나, 체제를 전복하려는 충동이 아니라 헌정 질서를 회복하려는 집단적 의지를 드러냈다. 분노는 있었으나 방종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비판은 날카로웠으나 파괴로 흐르지 않았다. 이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시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경험적 실체다. 제도에 대한 태도 역시 성숙했다. 국회와 사법부, 행정부에 대한 불신과 비판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 비판은 제도를 무너뜨리는 방향이 아니라 제도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로 수렴되었다. 절차의 정당성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과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힘의 사용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공유되었다. 제도를 맹신하지도, 전면 부정하지도 않는 이러한 태도는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민주주의의 실질적 자산이다. 지난 6월, 새 정부 출범 이후의 대외 환경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미·중 패권 경쟁은 세계 공급망을 흔들었고, 미국의 통상 압력은 한국 제조업의 심장을 겨눴다. 동맹의 가치가 경제 협상의 지렛대가 되고, 관세는 안보와 산업 사이의 경계를 흐르는 새로운 무기가 되었다. 전대미문의 광란 같은 외교·통상 전쟁터 속에서 정부는 중심을 잡고 버티기 전략과 기민한 대응을 통해 위험을 최소화하며 국익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 모든 과정은 정부나 특정 집단만의 성취가 아니었다. 불안한 일상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고, 공동체의 안정을 우선하며, 감정의 격랑 속에서도 이성을 붙들어 준 국민들의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소수 언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언론은 혼란을 증폭시키기보다 사실과 맥락을 전달하는 데 애썼고, 학계와 전문가 집단은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제도의 취약점과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다. 지난 1년,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며 이 나라를 지켜낸 모든 시민과 공직자, 기업인, 그리고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감사를 드린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