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1년, 여전히 질주중인
윤석열표 '의료민영화'

비상계엄 사태가 1년을 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은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시도를 시민들이 맨몸으로 저지한 날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12월 4일, 현지시각) 미국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1위 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가 맨해튼 거리 한복판에서 저격당해 사망한 일이다. 총격범은 민영 보험사의 탐욕과 부정의에 항의하는 의미로 범행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보험사의 '보험금 미지급'을 상징하는 단어들을 총알과 탄피에 새겼다. 미국인 전체의 들끓는 감정이 이 사건으로 폭발했다. 많은 이들이 총격범을 '현대판 로빈후드'라 불렀다. 사망한 보험사 CEO의 죽음엔 애도가 아니라 '축하'와 '조롱'이 쏟아졌다. 뉴욕 시민들은 저격범과 유사한 복장을 하고 다니며 수사와 검거를 방해했다. 결국 총격범은 같은 해 12월 9일 맥도날드 종업원의 신고로 붙잡혔는데, 그 점포는 별점 테러와 빗발치는 항의를 받았고 '안네 프랑크'를 밀고한 나치 부역자 취급까지 받았다. 한국에서도 물론 보험금 미지급은 흔하다. 보험사는 '평생 동반자' 운운하지만, 막상 암 등에 걸리면 갖가지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런데 미국 보험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보험사는 '사전 승인' 권한을 갖는다. 한국에선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해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없다. 미국에서 민영의료보험사는 병원을 직접 소유해 운영하거나 지배적 계약을 맺고 치료 결정까지 좌우한다. 유나이티드헬스케어가 1위 보험사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승인 거부율이 32%로 업계 1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인 3명 중 1명 꼴로 치료를 거부, 죽음을 선고하며 막대한 이윤을 남긴다. 시가 총액이 애플, 구글, 월마트 다음으로 큰 기업이 된 방식이다. 미국인들이 자조하는 대로, "길거리에서 사람을 쏘면 살인자가 되지만, 병원에서 사람들이 치료받을 기회를 빼앗아 수천 명을 죽이면 성공한 기업가가 된다." 그래도 사람들은 유나이티드헬스케어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 병원 점유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거대 보험사에 가입해야 되도록 많은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기만 한 게 아니다. 한밤중에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도 집 근처 가까운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다. 갖고 있는 민영보험이 허락한 병원에 가야 한다. 그 병원에서도 의사가 아니라 보험사가 승인한 치료를 받는다. 전국민건강보험이 없고 민영보험사가 병원을 장악한 미국 의료의 현실이다. '한국판 유나이티드헬스케어' 꿈꾸는 보험사들 한국의 보험사들도 유나이티드헬스케어 같은 기업이 되길 꿈꾼다. 2005년 삼성생명 내부보고서 유출로 드러난 대로, 그들의 최종 목표는 '정부 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이 되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그 목표에 따라 삼성화재가 병원들과 협약을 맺었다고 2014년 보도했다. 그 보도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병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자신들이 지정하는 병원에서만 환자를 받게 될 것"이라고. 홈플러스에 업체들이 입점하는 것처럼 개인병원들이 입점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식 보험 구조다. '플랫폼'을 장악하는 것은 그런 구조를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배달의 민족'과 '카카오택시'가 선례를 보여준 것처럼 플랫폼을 지배하면 산업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그래서 보험사들은 원격의료 플랫폼에 주목해 왔다. 2007년부터 삼성경제연구소가 영리병원 도입,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같은 노골적 민영화와 함께 원격의료를 제시해 온 이유다. 최근 팬데믹과 함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열리며 보험사는 기회를 맞았다. 삼성화재는 '나만의 닥터'와 제휴해, '건강관리부터 치료까지 한번에' 삼성에서 하라고 광고하고 있다. KB손해보험 자회사는 '올라케어'를 인수해 자사 앱으로 원격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아예 직접 '헬스콜 센터'를 운영하면서 가입자에게 내과, 외과, 산부인과 전문의 전화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원격의료를 법제화하더라도 영리 기업 진출을 불허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유럽 국가들처럼 정부가 공공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결국 기업에 플랫폼을 허가하는 의료법 개정을 강행하고 말았다. 계엄 1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물론 한국 의료는 미국과 다르다. 한국엔 영리병원이 없고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있다. 하지만 보험사가 플랫폼을 장악하면 한국 의료는 미국 같은 형태로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첫째, 기업 플랫폼 허용은 영리병원 도입 효과를 낸다. 플랫폼이 남길 이윤은 의료비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기업의 수익과 배당을 위해 의료비가 오르고 과잉 진료가 유발될 것이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는 플랫폼 수수료 명목으로 원격의료 시범 수가를 대면진료의 130%로 올렸다. 이것이 본사업에 적용된다면 의료비가 최소 30% 오른다. 둘째, 건강보험 제도가 휘청일 수 있다. 플랫폼이 가져가는 돈의 상당 부분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나간다. 플랫폼이 돈벌이를 할수록 건강보험 재정이 축난다. 한국은 이미 건강보험이 취약하다. OECD 국가 중 보장성이 가장 낮다. 지금도 민영보험이 그 취약성을 이용해 시장을 넓히고 있다. 셋째, 공공의료가 붕괴할 수 있다. 한국은 공공병상 비중이 10%가 안 된다. OECD 평균은 70%가 넘고, 미국만 해도 20%가 넘는다. 지금도 비급여 돈벌이에 의사가 몰려 중증, 분만 의료 등은 외면받고 '응급실 뺑뺑이'가 일어나고 있다. 의료가 더 상업화되면 더 많은 환자가 길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