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조차 새삼스럽지 않지만, AI가 바꿀 세상을 당최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반복적인 단순노동의 경우 조만간 완벽하게 AI로 대체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글 쓰는 작가와 기자, 창의적 활동을 하는 예술가도 직업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한다. 전문직의 최고봉이라는 변호사와 의사조차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AI가 몰고 올 사회 변화에 대한 초기의 핑크빛 전망은 시나브로 잿빛으로 변해가는 모양새다. AI가 무제한으로 학습하는 데이터에 대한 지식 재산권 문제로부터 불법적 활용과 관련 법 조항 미비 등의 한계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가 고민하는 화두가 됐다. 산업을 혁신하는 '게임 체인저'가 아니라 인간의 지성과 사회적 윤리를 파괴하는 '흉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시선을 학교 교육으로 좁혀 보자. AI의 시대를 선도한다거나 맞춤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등 대학의 홍보 문구에 AI는 이미 전가의 보도다. 언뜻 전공을 불문하고 커리큘럼과 교육의 목표를 넘어 건학 이념조차 AI로 대체되고 있는 느낌이다. AI를 내걸지 않고선 신입생 유치가 어렵고, AI가 아니고선 대학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는 교육? 대학의 변화에 고등학교 또한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다. 지난 정부에서 국책 사업처럼 추진했던 디지털교과서 도입은 막대한 세금만 낭비한 채 사실상 실패로 끝났지만, 교육과정에서 AI 활용 교육은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지역 교육청에서도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AI 활용과 관련된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이수를 의무화하는 추세다. 학교에서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인 건 맞다. 수업 교재로 활용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거나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의 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 교과별 회의록을 준비하고 가정통신문을 학부모에게 보내는 일도 불과 몇 분이면 뚝딱 해치울 수 있다. 듣자니까,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일까지 AI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한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학교생활기록부도 AI의 손에 넘어갔다.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AI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쓰는 교사들을 향해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젠 AI를 활용하지 않는 교사를 되레 무능하다고 혀를 끌끌 차는 상황이다. 아예 학교에서 예산을 책정해 상위 버전의 AI 프로그램을 구매해 쓰라고 권장할 정도다. 과거 스마트기기가 그랬듯, AI에 대한 아이들의 '감수성'과 '숙련도'는 늘 학교와 교사보다 한발 앞서 있다. AI 덕분에 개인별 과제물과 모둠별 활동 보고서는 그들에게 가장 쉬운 숙제가 됐다. 만약 그걸 기준으로 점수와 등급을 매긴다면, 아이들의 노력 여하가 아니라 각자 활용한 AI의 버전에 따라 나뉘게 될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제 집에서 해오는 숙제는 모든 학교에서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가 자녀의 숙제를 대신 해주는 게 문제가 됐는데, 그조차 옛말이 됐다. 교육적 견지에서 보면, 적어도 부모와 자녀가 숙제의 내용을 공유하기라도 했던 그때가 AI에게 모든 걸 맡기는 지금보다 더 나았던 듯도 싶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