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는 해마다 연말이 되면 메밀국수를 먹는 에피소드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주인공 고로 상은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도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바쁘고, 또 일을 하다보면 어김 없이 배가 고파와서 혼자만의 정찬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이렇게 말한다. "저런, '해넘이 국수'를 아직 못 먹었잖아!" 그리고는 서둘러 소바 가게를 찾는다. 액운을 끊어낸다, '해넘이 국수' 일본의 해넘이 국수(年越しそば)는 에도 시대부터 정착된 풍습으로, 매년 12월 31일에 메밀국수를 먹는 것을 말한다. 저녁 식사로 먹기도 하지만 제야의 종이 울리기 직전 야식으로 먹는 게 가장 좋다고 하며, 자정을 넘겨서 1월 1일이 되면 먹지 않는다고. 이 시기에 메밀국수를 먹는 이유는 첫째, 긴 국수 면발처럼 장수하기를 바라거나 좋은 인연이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툭툭 잘 끊기는 메밀국수를 먹으며 지난 한 해의 나쁜 일과 액운 같은 것들을 끊어버리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니 새해를 넘겨서 먹으면 안 되는 거다. 고로 상의 열렬한 팬인 동시에, 또 뭐라도 먹을 구실이 생기면 그저 즐거운 나는 이런 문화가 퍽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렇구나. 새해에 떡국 먹는 것만 알았지 전날 밤에 메밀국수 먹는 건 또 새롭네. 국숫발을 끊어 먹으며 액운을 끊어낸다는 의미도 그럴듯하고, 평범한 국수 한 그릇이 또 나름의 의미를 갖고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도 좋지 않은가. 그래서 나도 언제부터인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면 메밀국수를 찾아서 먹곤 한다. 거듭되는 송년회에 지친 몸을 다스리고 맑은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 데에도 깔끔한 메밀국수는 제법 효과적이다. <서령>에서 만난 순면 메밀국수 다시 연말이 다가왔다. 12월도 중순을 넘겨서 한 장 남은 달력마저 위태롭게 느껴지던 어느 날, 나는 점심시간에 순면 메밀국수를 먹기 위해 남대문 근처 <서령>을 찾았다. 해넘이 국수라기엔 조금 이른 시점이긴 했지만,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올 한 해를 조용히 혼자서 돌아볼 생각이었다. 지난 밤 송년회 여파로 불편한 속을 좀 풀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강화도에서 막국숫집 간판을 달고 영업을 시작한 이래 평양냉면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타고 성지로 등극하더니, 서울 한복판에 상륙해서도 명성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서령>은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라 점심시간 대기 줄이 길기로도 유명하다. 일부러 붐비는 시간을 피해서 갔고, 혼자 몸이라 그래도 쉽게 입장할 수 있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