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기다림, 내 아내와 김중미가 공유한 '연대의 시간' 살다 보면 유독 선명하게 남는 이름이 있다. 내게는 '김중미'라는 세 글자가 그렇다. 33년 교직 생활 동안 세세한 문장은 휘발되었을지언정, "그녀가 다시 책을 내면 고민 없이 사야겠다"는 다짐만은 낡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드디어 그 다짐을 지킬 기회가 왔다. 김중미 작가가 신작 에세이 <엄마만 남은 김미자>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들고 우리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을 다시 펼치며, 나는 김중미라는 이름이 내 개인사를 넘어 우리 시대의 질문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어쩌면 그녀의 이름이 내 곁에 이토록 오래 머문 것은 아내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아내 역시 대학 시절, 김중미 작가와 닮은꼴로 상계동의 가난한 이웃들 곁을 지켰다. 대한성공회에서 운영하던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아내의 청춘은 작가의 '괭이부리말'과 같은 온도로 타올랐다. 그래서 내게 김중미에 대한 글은 단순한 서평이 아니라, 내 아내와 작가가 공유했던 '연대의 시간'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지지 않겠다는 선언, '연결'로 일궈낸 삶의 자리 인천 만석동의 척박한 동네에서 사랑과 연대의 물길을 길러 올렸던 그녀가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작가는 고백한다. 엄마처럼 세상에 지고 싶지 않았다고. 그래서 그녀는 낮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가난해지기를 선택했다. 그녀가 꿈꾼 것은 가난한 아이들을 성공시켜 부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소외된 이들을 서로 연결하고, 누구도 고립되지 않게 하는 '연결망'을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것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우리 민족이 잃어버렸던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복원하는 숭고한 작업이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조상들이 걸어온 시간의 결과물"이라는 그녀의 선언은, 파편화된 개인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실존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가난을 지탱한 '낭만'이라는 보루, 그 부러운 문화자본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