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글자 한 자, 문장 하나를 바꿔서 사람을 죽이고 정적을 제거한 사건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김부식이 시 한 구절과 관련하여 정지상을 주살하고, 유자광은 소년장군 남이의 '미평국(未平國)'의 평(平)을 득(得)자로 바꿔 죽였으며, 간신들은 청 태종도 죽이지 못한 임경업의 '용천검(龍泉劍)'의 천(天)으로 고쳐 죽였다. 개혁정치가 조광조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자로, 역시 개혁정치가 정여립은 아들의 아호 '거점(去點)'이 빌미가 되어 역모로 몰아 죽였다. 정지상(?~1135)은 고려 문신으로 뛰어난 시인이자 정치인이다. 5세 때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을(乙)자를 강물에 썼는고" 했다는 일화가 전할 만큼 어려서부터 시재가 뛰어났다. 그러나 큰 뜻을 펴보지 못한 채 묘청의 서경천도 사건에 연루되어 김부식에게 피살되었다. 김부식과 정지상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 배경에는 시 한 구절에 얽힌 사연이 작용한다. 정지상은 젊어서 '사람을 보내며(送人)'라는 시 한 편을 지었다. 비 개인 긴 언덕에는 풀빛이 짙은 데 그대 남포에 보내자니 슬픈 노래 울먹이네 대동강물 어느 때에 마르리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보태지니. 정지상의 이 시 중 마지막 절구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보태지나"는 김부식이 욕심내는 절창이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자기에게 넘겨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김부식은 이에 앙심을 품고 사사건건 정지상을 적대시하였다. 김부식은 어느 봄날 고심을 거듭하여 시 한 절을 지었다. 버들 빛은 천 가지에 푸르고 복숭아꽃 만 점이 붉구나. 이때 옆에 있던 정지상이, "누가 천 가지, 만 점을 세어보았다던가? 왜 버들 빛은 가지마다 푸르고, 복숭아 꽃 점마다 붉네라고 짓지 못하는가?"라고 핀잔하였다. 이래저래 자기보다 시문에 있어서 한 수 위인 정지상을 당대의 권력자 김부식은 끝내 포용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렇지만 김부식은 '시적(詩敵)'을 시샘하여 죽였을망정 위서를 통해 정적을 타도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조선왕조에서 남이 장군처럼 연소기예(年少氣銳)한 무장은 일찍이 없었다. 태종의 외손자인 남이는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여러 무인직을 역임하였다.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대장이 되어 이를 토벌하고, 이어 서북변의 여진을 토벌한 공로로 이등군공을 받았으며 공조판서에 임명되었다. 26세에는 병조판서가 되었으니 지금의 국방장관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의 빠른 출세를 시기하는 자들의 참소로 병조판서에서 해직되어 겸사복장으로 밀려났다. 남이는 여진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백두산에 올라 '북정(北征)'이라는 시 한 수를 지었다. 이 시는 남이의 인물됨을 말해주거니와 후일 무고와 음해의 빌미가 되었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