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라는 선택, 수행자는 왜 그와 함께했나

- < [인터뷰 ①] 불교 종단개혁, 일제와 군사독재 굴종 걷어낸 혁명 >(https://omn.kr/2ggti)에서 이어집니다. 정치와 거리를 두려 했던 수행자는, 결국 정치와 권력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을 지켜보게 됐다. 장기수와 마지막 빨치산, 성남의 시민운동가들 곁에 서 있으면서, 그는 먼저 인간을 보고 그다음에 권력을 보는 법을 익혔다. 노무현과 이재명을 가까이서 만난 것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 효림 스님은 이를 '정치적 선택'이라 부르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 권력을 대하는 몸짓을 유심히 살폈을 뿐이라고 말한다. 2편에서는 장기수 인권운동과 봉국사 아침 죽 모임, 성남시장 경선 국면을 지나며, 그가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통해 확인하고자 했던 '정치의 최소 조건'을 따라가 본다. 장기수 곁에 남다... '석가모니가 배후다' - 종단 개혁 후 불교계 복지 활동과 인권 운동에 앞장서셨는데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입니까? "개혁 이후 불교가 내부 문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종단이 자기를 개혁해 낸 힘이 있다면, 이제는 그 힘을 사회로 돌려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종단 문제에서는 한발 물러나 시민사회 영역으로 활동의 중심을 옮겼습니다. 불교계 복지 활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했고, 인권 운동으로는 실천승가회를 중심으로 한 장기수 돕기 운동이 기억에 남습니다. 연등행사 때 음악회와 모금 행사로 기금을 마련해 장기수들의 생계와 의료를 도왔고, 파주 보광사 주지 시절에는 돌아가신 장기수들의 유골을 절 안에 모실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여사, 문근영 배우의 외조부 윤학진 선생 유골이 보광사로 오며 논란이 커졌을 때, '배후가 누구냐'는 질문에 '석가모니가 배후다'라고 답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업씨와 관련해 이름이 자주 언급됐습니다. 당시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2002년 대선 당시 김대업씨가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일었을 때, 저는 이해학 목사와 함께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참여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김대업 사건의 폭로 과정이나 자료·언론·정치권과의 연결 등 기획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이 급속히 정치화 돼 김대업씨가 홀로 책임을 떠안는 상황에서, 그의 이후 범죄 이력과는 별개로 한 인간이 완전히 소모되는 것을 막고자 주변에서 최소한의 도움을 준 것이 전부입니다. 사법적으로는 개인의 무고·명예훼손으로 결론 났고, 정치적으로는 병역 특혜 문제가 잠시 공론화 된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그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정치화 과정에서 한 인간이 소모되는 것을 지켜본 주변인이었습니다." 봉국사 아침 죽 모임... 정치가 시작된 자리 - 성남 봉국사 주지를 맡으면서 현 이재명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셨지요? "봉국사에 있으면서 처음에는 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성남 시민사회·정치권 인사들이 자꾸 찾았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이재명 변호사였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전화해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는 '나 혼자로 되는 게 아니다. 평소 가까운 사람들 명단을 불러달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 불러준 시민운동가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아침마다 봉국사에 모여 죽을 먹는 '죽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절에 모여 아침 죽 한 그릇 나누며 선거와 성남의 미래를 말하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됐습니다." -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으로 당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