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강경진압' 박진경 대령 암살사건, 그날의 진실

제주 4.3 항쟁 당시 제주도민을 무참히 진압했던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서훈 수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앞서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 서울보훈지청은 10월 20일 유족의 신청에 따라 박진경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이후 박 대령 유족은 11월 4일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령했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발간된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진경 대령은 1948년 5월, 국군 9연대장으로 부임한 43일 동안 약 6천 명의 도민을 체포했다. 이들 중에는 10대 소년에서부터 60살이 넘은 민간인 노인과 부녀자 다수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또한 재판정에서 박진경 대령의 참모였던 임부택 대위는 박 대령이 부대원들에게 도민의 체포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조선 민족 전체를 위해 30만 도민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 양민 여부를 막론하고 도피자는 3회 정지명령에 불응 시 총살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이는 결국 불행한 파국으로 이어졌다. 1948년 6월 14일 대령으로 진급한 당일 박 대령은 부하들에게 암살 당했다. 그런 문제적 인물이 지난 2025년 11월 4일 이재명 정부 아래 국가보훈부에서 국가유공자로 수훈을 받은 것이다. 이런 사실이 제주도민 사회에 알려지면서 급기야 제주도는 분노로 들끓게 된다. 국가보훈부 권오을 장관이 급히 오영훈 제주도지사를 찾아가 사과해야 했고 결국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박진경 대령의 서훈 취소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여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박진경 대령과 그를 암살한 이는 누구인지, 진실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박진경의 잔혹한 진압, 그리고 암살사건의 진실 박진경은 1918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 외국어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덕분에 영어에 능통할 수 있었다. 그 후 일본군 소위로 임관하여 일제를 위해 복무하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일제와 함께 몰락해야 할 그는, 해방후 미군정 시대가 시작되면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조선인으로서 다시 출세 길을 달리게 된다. 일본군 장교 출신 박진경이 미군정청 시대에 잘 나가게 된 이유였다. 이후 1948년 3월 제주에서 민중 항쟁이 벌어지자 박진경은 국군9연대장으로 부임한 지 43일 만에 도민들을 잔혹하게 진압했다. 그 성과로 불과 30세 나이에 육군 대령으로 빠르게 승진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박진경 대령 암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오래전 사건이라 기록은 부족하지만 여러 단서는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022년, 제주 4.3항쟁 74주기를 맞이하던 해에 <제주 작가회의>가 펴낸 '추념 시집'에 실린 글도 그 중 하나다. 해당 책자에는 1948년 6월 14일 박진경 대령을 암살한 혐의로 체포된 주범 문상길 중위를 비롯하여 직접 총을 쏜 손선호 하사, 그리고 사건을 공모한 혐의를 받는 이외 신상우(무기형), 배정호(무기형), 양회천(무기형), 강승규(징역 4년형)의 양형 결과 기록이 담겨 있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