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퇴직 이후, 지난 3년 동안 나를 가장 아프게 한 말이다. 아프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차라리 서늘하다는 쪽이 더 맞다. 통화는 끝났는데 내 쪽은 끝나지 않고, 손에 쥔 휴대폰이 식어 가는 동안 가슴 한쪽이 깊게 내려앉는 기분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머리는 알아듣는다. 그런데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함께 올라온다. 끝난 건가, 아닌가, 그럼 언제인가. '다음'은 날짜가 아니다. 약속도 아니고 책임도 아니다. 끊어졌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어진다는 약속도 아니다. 가능성만 남기고 생활은 비워 둔 채 떠나는 말처럼 들린다. 끝났다는 말보다 더 오래 마음을 헤매게 만드는 이유다. 하필 그 말이 연말에, 그것도 이번 주 월요일에 도착했다. 12월은 원래 "올해도 수고했다"는 덕담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달이고, 사람들은 달력을 정리하면서 '다음'을 희망처럼 붙여 말한다. 내년엔, 다음 달엔, 다음엔 좀 나아지겠지 하는 식으로 말끝이 따뜻해지는 계절이다. 나를 뒤흔든 '다음'이라는 말 하지만 그날 받은 연락에서 '다음'은 희망이 아니었다. 생활의 자리를 '미정'으로 밀어 넣는 통보처럼 들렸다. 친절하게 말해주니 화를 내기도, 누군가를 탓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일까. 마음은 오히려 더 정돈되지 않은 채로 흔들린다. 퇴직 후 3년 동안 나는 매달 두 번씩 가는 곳이 있었다. A사 연수원이 있는 두 곳을 오가는 일정이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외부 일정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나는 아직 사회 안쪽에 있다"는 확인이었다. 특히 매달 고정으로 잡힌 일정은 돈도 돈이지만, 달력에 찍힌 그 두 번의 '약속된 이동' 자체가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일종의 기본값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마음이 가벼웠다.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이 겹치는 날, 비록 잠깐이지만 나 자신을 다시 믿게 되는 날, 그래도 나는 아직 쓸모가 있다고 믿는 날이었다. 그 감각이 오늘까지 나를 버티게 했던 디딤돌이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A사에서 지난 3년 동안 맡아 오던 교육 과정에서 내 이름이 빠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물론 모든 강의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다른 보험사에서 진행하는 변동성 강의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매달 '고정'으로 잡혀 있던 일정이 사라졌다는 점이 달랐다. 교육 책임자와 실무진이 새로 구성됐고, "강사진을 새롭게 바꾼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리고 통화 끝에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