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가 아니라 국가범죄"... 전 진실화해위원 2년간의 분투

11월 12일 자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의 임기를 마친 허상수 전 진실화해위원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내에 있는 국회도서관 북카페에서 지난 23일 만났다. 2년간의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제주 4·3의 세계화·국제화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하여 들어봤다. 다음은 허상수 전 진실화해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 11월 12일 진실화해위원 임기를 마쳤다. 지난 2년의 시간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어떤 시간이었나? "첩첩산중을 헤매고 여러 고비를 넘긴 시간과 공간이었다. 어느 사건, 어느 한 분, 한 사람의 사연과 사정들이 그만큼 절박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조사관의 입장으로 보면, 어느 정도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을 했지만 마무리를 다하지 못한 그런 시간이었지 않았나 싶다. 저는 신청인들과 조사관들의 의견들을 충실하게 잘 듣고 최대한 조사보고서에 반영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경계선 위를 헤매다 만 것은 아닌가 두려울 뿐이다." 첩첩산중, 진실을 향한 여정 - 국회 선출 이후 대통령실 인사검증 과정에서 임명이 보류됐다가 9개월 만에 다시 임명됐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나. "임명 보류 사실은 언론 보도로 처음 알게 됐다. 당시 (임명 보류) 사태는 윤석열 정부의 낮은 인권의식과 '이행기 정의'에 대한 부정적 입장, 진실화해위원회에 대한 이해 부족 등 심각한 관료주의의 반영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다행히 국회의장 등 국회가 선출 정당성을 끝까지 지키며 재차 임명을 압박했다. 제주4·3유족회와 국내외에서 임명 촉구 성명이 이어졌고 미국 백악관 앞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을 질타하는 피켓 시위가 있었다.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출신의 이재승 교수 등 학계와 국가폭력 피해자들 역시 적극적으로 연대해 주었고, 그 지지와 신임이 끝까지 버틸 힘이 됐다. 제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값진 경험이다." - 보류 사유로 제기됐던 2021년 재심 선고유예 판결에 대해 지금도 여전히 부당하다고 생각하나? (허상수 전 위원은 1980년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법에서 금지한 노조를 결성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국가보위법이 위헌 판정을 받자, 2021년 허 전 위원은 재심을 청구했고 노조 결성에 대해선 무죄를 받았다. 다만 건조물 침입과 사문서 위조 혐의에 대해 선고 유예를 받았다. - 편집자 주) "박정희 18년 독재의 정점은 1972년 친위 쿠데타와 계엄 선포했을 때였고, 그 한해 전 국가비상사태 속에서 국가보위에관한특별조치법이 만들어졌다. 저는 1980년 서울의 봄 시기 중앙국제특허법률사무소에서 노조 대표로 활동하다 당시 최장시간 농성을 주도한 혐의 및 이 악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이후 이 법이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일부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선고유예가 있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이 선고유예를 이유로 임명을 9개월이나 보류했다. 지금 돌아봐도 이는 너무나 부당한 처사로, 한마디로 인격 살인과 같은 짓이다. 그래도 임명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버틸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포기하리라는 대통령실의 기대는 빗나갔다. 당시 정부에서 인사검증을 법무부에서 담당했는데,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고소를 해 볼까 별별 생각을 다했었다. 돌이켜보면 저는 이승만 시절 사촌형이 고문으로 희생됐고, 저는 박정희 독재 시절 만들어진 악법으로 전두환 시절 감옥에 갔으며, 그 악법이 위헌으로 무효가 되어 재심 무죄를 받았는데도 윤석열 정부에 이르러 다시 인격살인을 당했다. 역대 4명의 대통령, 국가범죄자들로부터 가족의 목숨을 빼앗기기도 했고 청운의 푸른 꿈도 짓밟히고 암흑 시대에 시달리는 서러움을 겪어 왔지만 꺾이지 않고 버티고 끈질기게 싸우고 따지면서 견뎌왔다." 국가범죄의 책임을 묻다 - 진실화해위원으로서 활동하시며 가장 중점을 둔 원칙이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이었나? 진실화해위 활동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과, 가장 무력감을 느꼈던 순간을 각각 꼽는다면? "저는 '과거사'라는 말보다 '국가범죄'라는 표현을 써 왔다. 대부분 사건은 일부 공직자의 일탈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 대통령과 국방부·경찰·정보기관 등 국가 공권력이 공모·개입하여 저지른 반인륜 범죄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에서 책임자를 적시하고 가해 주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려 했다. 조사보고서에도 막연한 '정부'가 아니라 '이승만 정부'처럼 시기와 책임 주체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