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내겐 좀 '특별한 정체감'이 깃든 한 해였다. 아이가 고3이었고 나는 올 1년을 '고3 엄마'로 살았다. 한 번의 입시로 삶의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고 믿는 대한민국에서 고3 엄마로 지낸다는 건 지난 17년간 해왔던 '엄마'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도는 일이었다. 한국의 고3 엄마들은 아이의 컨디션 관리에 최선을 다하면서, 아이의 진로와 관련된 내적 갈등을 겪는다(때로는 아이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아이가 치르는 매 시험마다 가슴을 졸이고, 그동안의 기대를 내려놓는 '상실'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원서 접수의 순간이 다가온다. 일단 원서를 넣은 후에는 많은 고3 엄마들이 두문불출한다. 혹여라도 바깥에서 감기 바이러스라도 묻혀와 아이에게 옮길까 봐, 여러 사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입방정이라도 떨게 될까 봐 조심스런 마음에서다. 나도 올 하반기는 외부와 조금 단절된 채 지냈다. 동시에 아이를 향한 안쓰러운 마음과 품에 있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가는 아쉬움,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정말 많은 정서적인 쓰나미가 몰려왔다. 감히 말하건대 한국에는 '고3 엄마 정체감'이 따로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올해. 마음이 심란해질 때마다 평화를 가져다 준 드라마의 말들이 있다. 올 한 해 내게 힘이 되어준 드라마의 대사들을 소개한다. "오늘은 아직 모르는 거야" 고3 엄마, 아니 입시를 치러야 하는 아이를 둔 대한민국 부모들을 관통하는 핵심 감정은 아마도 '불안'일 것이다. 올해 초, 고3 입시전략을 위한 학원 설명회가 줄을 이었고, 나는 설명회만 다녀오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학원이 불안을 조장한다는 것 쯤에는 이미 익숙해 있었지만 아이가 고3이 되자, 이 불안에 '그동안 뭘 잘못해 온 건 아닐까?'라는 후회가 더해졌다. 이런 기분은 한동안 나의 일상을 좀먹기도 했다. 그렇게 봄을 보내며 나는 '계속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불안과 후회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막막하던 찰라, tvN 드라마 <미지의 세계>를 만났다. 너무나 닮은 쌍둥이 자매가 서로의 삶을 바꿔 살아보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지만, 오늘은 아직 모르는 거야 미지야. 그러니까 우리 오늘을 살자." (월순, 5회) 부상으로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 미지(박보경)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할머니 월순(차미경)이 해 준 말이었다. 이 말에 미지는 '오늘'에 집중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