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크리스마스 날 늦은 오전, 아내와 루틴 중 하나인 산책길에 올랐다. 오늘따라 공원을 마치 독채 낸 듯,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성탄 이브의 시간을 보낸 탓일까', 아내와 생각했다. 성당에 다니다시는 지인 분 중 한 분이 아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을 모르고, 이전 근무지에 성탄 선물을 맡겨놓고 가셨다. 성탄 선물과 함께 정성스럽게 쓴 카드까지 담겨 있었다. 사실, 노부부에게 성탄 선물을 먼저 챙겨드릴 생각도 못 하고 잊고 있었는데, 도리어 우리를 잊지 않고 챙겨주신 마음이 감사했다. 와인 한 병과 작은 선물 꾸러미에는 열쇠고리, 초콜릿, 사탕 등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있었다. 노부부는 어느덧 팔순의 연세에 접어드셨다. 요즘 80대는 옛날 우리가 보고 느껴온 할머니 세대와는 다르다. 그 당시만 해도 '장수'라는 극존칭이 붙었지만, 요즘은 사실 몸만 나잇값에 국한되어 있을 뿐, 굳이 우리 삶에 나이를 경계선에 둘 필요는 없다. 손수 쓰신 크리스마스 카드를 마주하니 디지털 혁명이라는 거센 문화에 밀려 잊고 살았던 감각이 새삼스럽다. 직접 그림을 그려 성탄 카드와 연하장을 주고받던 옛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클릭 한 번이면 넘쳐나는 이모티콘의 시대. 그래서일까, 노부부가 정성을 다해 직접 자필로 쓴 카드를 마주하는 순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