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의 재판과는 인연이 닿지 않는 편이 좋다. 대체로 그렇다. 재판장에서 로또번호를 맞출 일도 없으니 말이다. 난 일로서 갔던 법정을 제외하고는 딱 두 번 법정과 인연을 맺고 말았다. 첫 번째의 인연은, 평택 대추리에서 빈집 위에 망루를 짓고 몸을 묶었을 때였다. 그 때 판사가 내게 했던 딱 하나의 질문이 생생하다. "시간을 되돌려도 똑같은 행위를 할 것이지요?" 마치 판사는 '내가 안 봐도 다 안다' 이런 뉘앙스여서 좀 웃음이 났더랬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기대했던 나는 판사가 비록 벌금형을 선고하더라도 나의 행위에 대해 "왜?"라는 이유를 한 번은 더 생각해주길 바랐었다. 법정과의 두 번째 인연은 운이 좀 나빴던 내 동생 친구 때문이었다. 그 아이를 어릴 때부터 봐온 사람으로서 감형은 힘들겠지만 적어도 누구 하나는 이 아이의 인생사를 알아줬으면 했다. 사건 관련 자료들을 볼 시간도 많이 없는 판사들의 현실을 알기에 설마 내가 공들여 쓴 탄원서를 읽어주셨을까 했다. 그리고 선고 날, 판사가 탄원서를 읽었고 그에 대한 짧은 소회를 이야기해주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죄를 저지르고 자신 앞에 앉아 있는 피고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봐 준 것에 너무나 감사했다. 따뜻하다. 전수안 전 대법관이 법조인 시절부터 퇴임 후 인권사회단체 활동 등을 하면서 쓴 연설문과 기고문, 칼럼을 모은 책 <지문 하나 남지 않은, 아무것도 아닌>을 읽으면서 든 느낌이다. 대법관 출신이 쓴 책이니 딱딱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던 걸까. 책 273쪽에서 '편견'에 대한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편견의 문을 통과하는 유일한 길은 그 문을 부수는 것이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첫 대법관이 된 서굿 마샬의 말이란다. 대법관이 말하는 연설이나 쓰는 글은 딱딱할 것이라는 나의 편견은 전수안 전 대법관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그의 글 한 글자 한 글자들이 모여 모조리 편견의 문을 부숴버렸다. 그러고는 따뜻함만이 남았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