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모델이 천직이라고 썼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은 이것뿐이다. 그런데 천직이라기엔 내게 누드 모델 일을 통한 벌이의 비중이 너무 작다. 지난 학기, 그러니까 2025년 하반기(미술 모델에게 시간은 학기 단위로 흐른다)에 나는 모델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낮엔 집 근처 공립학교 급식실의 배식원으로 일하고, 저녁엔 다이닝 레스토랑 디너부 서빙으로 투 잡을 '뛰었다.' 모델 일 요청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방학 때 생계를 유지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이었기에 4대보험이 되는 일을 구했고, 출근을 하느라 모델 일을 받지 못했다. 벌써 13년 동안 꾸준히 해 온 직업인데, 실은 매년 이 꼴이다. 모델 일만으론 살 수 없다는 것 모델 일로 온전히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알기론 다들 비슷하다. 주중에는 출근하는 생업이 따로 있고 주말에만 모델 일을 받거나, 모델 일을 포함한 시간제 일자리 2~3개를 병행하는 식이다. 어떤 선배는 평일엔 사무직 직장에 출근하고 주말엔 모델 일을 한다. 어떤 동료는 카페 아르바이트와 모델 일을 번갈아 가며 한다. 신입 모델을 모집하는 에이전시 등은 비교적 높은 시급(4만 원 내외) 혹은 일이 가장 많은 달(학기 중 시험 기간이 없는 시기)의 수입(월 300만 원 내외)을 홍보하지만, 그것이 연중 지속되는 금액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학기 중에는 일이 몰린다. 주 5일, 하루 4~6시간씩 수업이 잡힐 때도 있다. 그때는 '이번 학기는 모델 일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겠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시험 기간이 되면 수업이 멈추고, 방학이 되면 일이 뚝 끊긴다. 7~8월, 1~2월은 모델들에게 공포의 시기다. 학교는 방학이고, 사설 화실이나 작가 작업실의 일만으로는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신입 모델들은 방학 기간에 잠깐 다른 직업을 구했다가 돌아오지 못한다. 한 친구는 방학 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개강 후에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월급이 규칙적으로 들어오니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너무나 이해가 된다. 또 다른 문제는 4대 보험이다. 내게는 의료보험이나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이 모델 일에 전념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 되었다. 일을 하다가 다쳐도 산재보험이 없고, 다른 사정으로 일을 쉬게 되어도 실업급여와 같은 대책이 없다. 말 그대로 사각지대인 셈이다. 이 부분은 다른 프리랜서 직업도 마찬가지라 더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술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