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저녁 8시 39분, 휴대폰에 쿠팡 안내 문자가 들어왔다. "(쿠팡)고객님의 소중한 정보가 일부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문장을 읽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딸아이가 보이스피싱으로 수천만 원을 털린 경험이 있던 터라, 이런 문자 메시지에 대한 불안이 크다. 덕분에 링크를 여는 마음이 불편했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집은 쿠팡 활용도가 높다. 특히 아내는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대부분 쿠팡으로 해결하는 편이라, 집을 나설 때면 현관 앞에 박스가 놓여 있는 날이 잦다. 최소 주 2회 이상 배달되는 물품 박스는 '생활이 굴러간다'는 표시처럼 다가온 게 사실이다. 필요한 것들을 속도감 있게 받아볼 수 있으니, 일상의 작은 구멍들이 방치되지 않고 곧바로 메워지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날 이후, 현관 앞 박스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물품 박스가 불편한 건 아니다. 다만 박스를 둘러싼 '연결'이 불편해졌다. 일상생활이 플랫폼에 기대는 비중이 커질수록, 사고는 뉴스보다 먼저 내 집 현관에서 체감된다. 개인정보 노출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예민해진 게 사실이다. 조심성의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확인 절차와 책임을 더 많이 떠안게 되면서 경계심을 기본값으로 켜야 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쿠팡 문자를 받았던 그날 밤, 아내도 내 표정을 보고 "이거 진짜야?"라고 물었다. "글쎄…"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잘 모르겠다는 뜻인데, 마음은 화가 올라오고 있었다. 쿠팡을 자주 이용하는 집인데 이런 문자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이 화가 난다. '생활의 도구'가 '생활의 부담'이 되는 현실 앞에서,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다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다 보니 낮에는 현장에 서고, 이동 중에도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교육 담당자 연락일 수도 있고, 교육생 문의일 수도 있어서 모르는 번호라고 무조건 끊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사건을 겪고 나면, 낯선 번호 하나에도 마음이 경직된다. "누구지? 뭐지?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문자든 전화든 경계심이 뒤따라온다. 실제로 의심 문자와 전화를 같은 날 두 차례 받은 적도 있다. 12월로 넘어오자 쿠팡 사건은 더 시끄러워졌다. 12월 4일에는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통합대응단>에서 알려드립니다" 같은 문구가 붙은 안내가 들어왔고, 스미싱·보이스피싱을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뉴스나 유튜브로 정부부처 업무보고 중계를 보면 쿠팡 사고가 비중 있게 언급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강제조사권 도입을 보고했다는 말, 과징금 가중 방안을 논의한다는 말도 따라온다. 성탄절 무렵에는 긴급회의에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논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부 매체에서는 쿠팡이 건드린 '역린'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