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부자보다 추억 부자를 택했다

집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 집을 짓고 싶어 하는 남편과 그렇지 않은 나의 의견 차이는 6개월간 좁혀지지 않았다. 한동안 집안에는 싸늘한 공기가 돌았고, 서로의 주장은 팽팽히 맞섰다. 결혼과 동시에 서울에서 지방 소도시로 이사 와 두 아들을 낳고, 첫째가 네 살이 되던 2018년의 일이다. 신혼 초부터 남편은 "언젠가는 우리 땅에, 우리 집을 짓자"라고 말해왔다. 처음엔 현대인의 로망쯤으로 여겼다. 그러다 어느새 집의 모양이 바뀌고, 기능이 덧붙고, 소재가 업데이트 되더니 결혼 만 4년을 한 달 앞둔 시점, 집 짓기는 우리 가정의 '진짜 현실'이 되었다. 남편에게 집이란 단순한 거처가 아니었다. 커가는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 환경에 대한 고민, 그러나 이제 막 자리 잡은 일터를 두고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앞으로의 삶의 형태, 우리 가족의 생활 방식이 담길 '틀'을 고민하고 있었다. 한 시간 거리의 신도시 아파트까지 보고 온 남편은 주말 부부로 지내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 남는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담은 '우리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당시 지방에도 아파트 투자 바람이 불며 분양 소식이 쏟아지던 때였다. 그는 아마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족은 함께 지내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 시골에 무거운 짐을 두고 싶지 않았던 마음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흔들렸다. 그리고 반년 넘는 고민 끝에 우리는 결국 집을 짓기로 했다. 부동산이냐, 추억이냐. 그 끝에서 과감히 추억을 선택했다. 그래, 마음껏 놀아라 "집 콘셉트부터 정하자. 플레이 그라운드 어때?" "재밌겠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생각과 잘 맞는 것 같아. 좋아!" 짓기로 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꿈꾸던 '우리 집'의 그림을 활짝 펼쳐가기 시작했다. 풀어가는 방식은 다를지언정 큰 방향은 늘 같았던 부부의 팀워크 덕분에 그림은 쉽게 그려졌다. 그 밑바탕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결정이 있었다. 우리가 가장 첫 번째로 바랐던 건 아이들이 자신다운 삶을 만들어 갈 창의성을 갖추는 것. 우린 '우리다운 집'안에 그 바람을 고스란히 담기로 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