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 시골 사는 사람들이
아파트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

오전 9시,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지만 버스정류장에는 이미 볼일을 끝낸 사람들로 북적인다. 찬 바람을 피해 건물 안에서, 혹여나 버스를 놓칠까 정류장 근처에서 버스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충북 옥천 안남면에서 왔다는 80대 여성은 오전 7시에 나와 병원 진료와 간단한 장을 보고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9시 30분 차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손목시계와 버스를 연신 확인한다. 11월 15일은 주말 오일장과 김장철이 겹친 날로, 옥천읍 일대가 어느 때보다 번잡한 시기다. 버스정류장도 마찬가지. 양손 가득 짐을 든 주민들이 저 멀리 버스가 보일 때마다 일제히 얼굴을 내밀어 차 번호를 확인한다. 인도 차도 할 것 없이 승용차, 버스, 사람으로 혼잡한 날, 옥천 읍면 지역의 주민들이 모인 버스 정류장에서 옥천 대중교통에 대해 물었다.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버스 타기 어려워요" 장보기를 마친 김순임(84)씨가 버스정류장 옆 연석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그의 곁엔 노란 보자기로 감싼 김장거리가 함께다. "옥천읍 죽향리에 살아요. 시내에서 집까지 차로 6분 거린데, 버스 타면 20분 걸려요. 버스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치면 30~40분 정도. 몸이라도 좋으면 괜찮은데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으니 무거운 짐을 끌고 가려면 시간이 더 걸려요." 버스 이야기에 젊었을 적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30대인 그는 옥천읍 수북리로 반찬 장사를 나갔다. 여러 반찬을 머리에 이고 수북리 구석구석으로 장사를 다녔다. 수북리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걸어 다녀야 했다. "수북리 쪽에 가면 십리는 기본으로 걸어야 했어요. 돈 대신 보리쌀로 반찬 사는 사람이 많아서 돌아올 때도 짐이 많았죠.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40대쯤 금강휴게소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19년 정도 일했는데, 초반에는 버스가 없어서 옥천IC(옥천읍 삼양리) 쪽에서 차를 잡아탔어요. 그쪽에 화물차가 많이 다니니까 사정을 이야기하면 목적지 근처까지 태워다 주곤 했어요. 나중에 출퇴근 버스가 생겨서 그럴 필요는 없어졌지만 지금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죠." 젊었을 적에도 어려웠던 대중교통이지만 그는 "8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버스 타기가 어렵다"며 한숨을 쉰다. "예전보다 버스가 많아졌다고 해도 부족해요. 저는 읍에 살아서 비교적 거리가 가까우니까 괜찮지만 면 지역 사람들은 버스 아니면 갈 방법이 없어요. 물론 택시가 있지만 비싸잖아요. 장날이면 면 지역에서 사람들이 오는데, 오고 가는 길이 힘들다고 얘기해요.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보면 시골에서 살기가 힘들구나 싶죠." 군서면에 사는 전정례(70)씨도 김장거리를 사기 위해 오일장에 왔다. 항상 버스를 이용하는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버스 계단이 고단하기만 하다. "농사를 지으면서 무릎이 많이 상했어요. 맨몸으로 짐을 드는 게 버거울 만큼요. 장날에는 짐이 많으니까 배로 힘들어요. 또 버스 위로 짐을 올려야 하고... 계단이 낮으면 좋겠어요." 그가 주말에도 아침 일찍 장을 보러 나온 이유는 늦게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없어서다. 일정이 많은 날이면 평소보다 더 일찍 움직여야 한다. "마을에 학생들이 많았을 땐 오후 8시 20분까지 차가 있었는데 지금은 막차가 오후 7시 10분이에요. 병원이나 은행같이 읍에 볼 일이 생기면 서둘러 일을 봐야하니까 마음이 조급해져요.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비용이 부담스러워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는 게 낫죠. 오늘처럼 다른 일정 없이 장만 보면 되는 날도 아침 일찍 나오는 게 마음 편해요."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