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기는커녕 빙 둘러싸고 싸움 구경... 학폭 제도가 만든 교실 풍경

대입 전형에서 학교폭력(학폭) 가해 기록은 치명타다.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에 따라 올해부턴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학폭 가해 기록을 대입의 모든 전형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기준이 강화되었다. 최근 한 지방 거점 국립대의 수시 전형에 응시한 학폭 가해자 18명이 전원 불합격 처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이 대입에 철저히 종속된 현실에서 어떻게든 학폭을 줄여보려는 고육지책이다. 이를 통해 학폭에 대한 경각심이 고취되었고, 학폭 가해자를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는 여론 또한 팽배해 있다. 교사들도 아이들 앞에서 학폭을 저지르면 그걸로 학교생활은 끝이라고 연일 강조한다. 그런데도 학폭은 줄어들 기미가 없고 나날이 흉포화하는 양상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학폭 신고 센터와 112 등에 접수된 학폭 신고 건수가 무려 72%나 증가했다. 학교에서도 봇물 터지듯 학폭 사안이 접수되면서 학생부장직은 기피 업무 '0순위'가 됐다. 관련 통계를 보면, 초등학교에서 학폭 피해 응답률이 높다는 점이 주목된다. 학폭의 해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강화됐고, 덩달아 학폭에 대한 아이들의 민감도가 높아진 결과로 풀이된다. 신고된 셋 중 하나는 별다른 조치 없이 마무리되지만, 사안 처리 과정에서 학교의 부담은 교육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고등학교에서 학폭은 변호사를 선임해 대처하는 경우가 확연히 늘어나는 추세다. 대입 전형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사안의 처리 과정에서 온갖 꼬투리를 잡아 이른바 '맞폭'으로 대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때마다 학교는 살얼음판을 걷듯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일단 학폭 사안이 접수되면, 학교는 화해를 권유하거나 중재하는 그 어떤 행위도 해선 안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 어느 한쪽에서라도 문제를 제기할라치면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둘 사이에 접촉을 차단하고, 사안 조사와 처리를 교육청의 학폭대책심의위원회에 넘기는 게 상수다.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 문제는 학폭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쌓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판단한 뒤 화해를 유도하고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건 교사의 당연한 책무일 테지만, 현행 제도상 엄격하게 금지된다. 되레 즉시 해야 할 업무는 피해 학생으로부터 '분리 의사 확인서'부터 서명받는 일이다. 피해 학생의 요청에 따라 가해 학생을 분리하면, 가해 학생은 최장 일주일 동안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없다. 해당 기간에 교과 담임교사들은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가해 학생에게 별도의 수업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가해 학생의 학습권도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