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마비로 누워있는 내 아들, 박완서가 주는 위로

처음으로 글을 재미있게 읽었던 때는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박완서 작가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라는 신문 연재 소설에 푹 빠졌다. 신문이 도착하면 고향 집 마루에 앉아 그것부터 읽었다.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읽었던 소설은 현실을 잊게 했다. 막막했던 앞길이나 잦은 부모님 다툼, 아슬하게 깨질 것 같았던 사랑마저도 나중 일이었다. 그 소설은 리얼하고 쫄깃하여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즈음에,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소설은, 수지가 동생 오목이의 손을 일부러 놓아버리는 사건이 중심이다. 피란길에서 벌어진 일이라 수지 외에는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전쟁 이후에 유복한 삶을 사는 수철, 수지 남매에 비해 오목이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 남매의 대비를 통해 전쟁 이후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숨겨둔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오목이가 당하는 고통과 한, 억울함을 보며 마음이 아렸다. 연재 소설이라 늘 다음 편이 궁금했다. 그래서 신문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대문 쪽을 엿보며 지냈던 시절이었다. 자식 잃은 부모, 자식이 아픈 부모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7년쯤 전에, 또다시 박완서 작가의 글에 푹 빠진 적이 있다. 동료 교사의 고등학생 아들이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동료는 숨이 멎을 것처럼 떨었다. 결국 동료는 명예퇴직했다. 그때 우리는 그 충격을 달래느라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가 쓴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을 릴레이 독서하듯 서로 돌려가며 읽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 그 어떤 말로도 치유할 수 없는 참척의 아픔을 글로 대신한 책이었다. 그 책에서 박완서 작가는 말했다. 눈물로 쓴 박완서 일기: 연재에 앞서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이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입니다. 훗날 활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거나, 누가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같은 것을 할 만한 처지가 아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쓴 것입니다. 그 책을 읽으며,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동료의 아픔이 내 것인 양 쓰라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내 아들은, 죽음과 진배 없는 몸으로 6년째 병상에 누워있을 때였다. 아들은 갑자기 당한 사고로 몸의 온갖 곳이 다 마비되고 인지도 없는 사람이 되어 모든 일상을 내려놓고 말았다.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그 책에서 박완서 작가는, 한 지인을 방문했는데, 중증 환자인 아들을 향해 투덜대는 그 엄마가 부러웠다고 했다. 그런 몸 상태일지라도 그 아들이 살아있는 것이 부러웠다고 했다. 나도 그렇고 그 엄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들이 살아있다고 한들 참척의 고통을 겪고 있다. '참척(慘慽)'은 가장 참혹하고 비통한 슬픔이란 뜻인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에게나 쓰는 말이다. 아들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내 동료나 박완서 작가가 급성 참척을 겪었다면 나는 만성적인 참척의 아픔을 겪고 있다(관련기사: 6개월마다 겪는 초비상사태 "아들아, 이 밤을 견뎌다오" https://omn.kr/2fnsw). 2013년 1월에 친한 지인으로부터 박완서 작가의 <세상에 예쁜 것>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때같은 아들이 그렇게 누워버린 어미에게는 영화도, 여행도, 책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어디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 책을 한 번 훑어 보고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그러다 10년이 더 지난 이제야 읽게 됐다. 아들이 그때보다 나아진 것도 아니고 앞으로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14년 정도 지나고 나니, 그런 아들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덜 아픈 건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책꽂이에 꽂혀 있기만 했던 <세상에 예쁜 것>이라는 책을 펼쳤다. 그 책 첫 장에는 지인이 정성껏 적어 준 글귀가 있다. 그 메모의 의미가 이제야 오롯이 내게 닿았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