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계에서 자신의 이름이나 호를 딴 '학(學)', 예컨대 조선왕조 시대의 '율곡학'·'퇴계학'·'남명학'·'다산학'등을 일컬을 때, 율곡 이이는 그 첫 순위에 드는 분이다. '율곡학파의 조종(祖宗)'이다. 율곡은 총명하게 태어난 데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신사임당의 훈육으로 학문에 전념하여, 과시마다 장원을 차지하여 세간에서 '구도장원공(九度狀元公)'이라 불렀다. 아홉 차례 과시에서 모두 장원을 차지한 수재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에는 <성학집요>, <동호문답>, <경연일기>, <벽옹요결>, <인심도심결>, <천도책>, <만언봉사>, <학교모범>, <서월향악>, <옥조예>, <역수책>, <시폐칠조>등이다. 여기에 빠진 책이 있다. 율곡이 38세 때인 1573년 청주목사를 잠시 지내다 그만두고 고향인 경기도 파주 율곡으로 돌아와 <정언묘선(精言妙選)>을 편찬했다. 한나라에서 송나라까지 중국의 한시 중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시를 뽑아 엮은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