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같은 정신현상학과 싸우느라 50년이 흘렀다"

헤겔 연구자인 철학자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72세)이 머리 아픈 철학서 중에서도 독해하기 가장 어렵기로 악명 높은 헤겔(1770~1831)의 <정신현상학>(1807)을 <정신현상학-번역과 주해>(먼빛으로)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철학 연구자들은 주해가 달린 <정신현상학>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 예를 찾기 힘들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교수는 '역자 서문'의 첫 줄에 "괴물과 싸우다 필자도 괴물이 된 듯하다"라고 썼다. 1, 2권 합 1740여 쪽인 <정신현상학-번역과 주해>에는 각주만 무려 1200여 개이고, 해제도 300여 개나 달렸는데, 수년 동안 이 고단한 작업에 매진하느라 심신이 탈진했다는 말이 이해된다. 저자 스스로도 이 일을 하느라 '미치기 직전까지 갔다'는 탄식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 책의 출판기념회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주관으로 지난 26일 한양대 HIT 건물에서 열렸다. 행사장에는 한철연 회원 30여 명을 포함해 1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필자는 코로나 19가 유행하기 직전까지 이병창 교수가 지도하는 독서 모임에 함께했던 인연이 있어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책을 미리 구해서 일주일 동안 짬짬이 붙들고 읽었지만 채 30장을 넘기지 못했다. 머리에서 쥐가 난다는 표현은 이럴 때 딱 맞는 말이었다. 이는 철학 연구자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출판기념회의 사회를 본 전호근 교수(동양 철학자, 경희대)도 헤겔 철학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칸트는 어떻게 대충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나중에 보니 오해였죠. 그런데 헤겔(정신현상학)은 여전히 '오해'조차 어려운 상태입니다. 이병창 교수가 주해 달린 헤겔 책을 썼으니 이참에 읽어볼까 합니다."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 하에서 헤겔의 정신적 고투에 동병상련을 헤겔이 어렵기는 저자인 이병창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 시절에 <정신현상학>을 읽기 시작했는데, "한 페이지 읽다가 졸고, 한 페이지 읽고 술 마시고"를 반복했으며, "그 난해성 때문에 때로 분노나 눈물이 나기도 했다"라고 고백했다. 이 교수는 대담에 앞서 헤겔 철학에 입문한 계기에 관해 말하면서 헤겔이 살던 시대와 저자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느낀 '동병상련'을 언급했다. "사실 우리 시대 역시 헤겔이 부딪혔던 동일한 분열에 시달렸습니다. 민족은 남북으로 분열됐고 봉건적 군사 독재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 초반 군사 정권이 전개한 자본주의 현실 역시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민족 분열과 봉건적 억압, 다가오는 원시적 자본주의의 비참함 앞에 선 독일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헤겔의 정신적 고투는 동병상련의 애정을 느끼게 했고, 이런 애정이 헤겔 <정신현상학>의 번역과 주해에 매달리게 된 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철학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청년 헤겔은 프랑스혁명(1789)에 열광했고, 이 혁명은 그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튀빙엔 학창시절에 헤겔은 휠더린, 쉘링 등의 친구와 함께 교정에 "자유의 나무를 심고 혁명가를 부르며 그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었다"(<청년헤겔>, 루카치 지음)고 한다. 36세가 된 헤겔은 1806년 10월 13일 프랑스군 점령 하의 예나에서 말 타고 가던 나폴레옹을 보고 '마상의 세계정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 정신을 구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날 새벽에 헤겔이 <정신현상학> 원고를 끝냈다고 한다. 헤겔의 절대정신을 신이 아니라 공동체정신으로 해석 저자의 발언에 이어 대담자로 참여한 철학 연구자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질의에는 연효숙, 이정은, 이종철, 최일규 교수가 참여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대담이었는데, 여기서는 몇 대목만 뽑아서 소개한다. 전체 내용보기